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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Nov 22. 2022

Once Upon a Time in Toronto

현대 자동차 포니가 캐나다에 처음 수출되던 1983년

이 사건이 생긴 지도 어언 수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토론토 교민 사회에서 생긴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의 하나라고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고국을 떠나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민의 연륜과 애국심은 정비례한다.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적어도 토론토에선.. 보리고개를 걱정하던 시절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누구나 한번씩 겪었을 것이다. 1970년대 초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나 갈 무렵 봉달 씨는 대한 남아, 운운하며 김포공항을 씩씩하게 떠나와 캐나다 땅에 도착했다. 

헬로, 마이 네임이즈 김봉달. 아이엠 후롬 코리아. 하우두 유 두?

코리아? 훼어 이스 디스 코리아? 파트 오브 차이나 오어 재팬?

아니 이런 무식한 인간들이… 


캐나다에는 도대체 코리아라는 나라가 지구 어느 구석에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에 속한 나라냐, 일본에 속한 나라냐 하는 등등, 대한 남아로서는 도저히 자존심 상해 밤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교육이 낮아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실제로 봉달 씨가 다니던 영어학교의 선생들이 하는 말들이었으니 코리아는 일반 상식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주 지극히 미미한 존재였다. 그래도 김포공항을 떠나던 때의 씩씩함으로 코리아 홍보에 앞장섰던 봉달 씨를 포함한 토론토의 대한민국 남정네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뗘준 사건이 생긴 것은 39년 전 1983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고 신문과 배달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은 김봉달 씨는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앞에 펼쳐 놓은 신문에 “코리아의 현대 자동차 캐나다에 포니자동차 처녀 수출”이란 기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토론토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던 김봉달 씨는 고국 사랑에 2 등가라면 서러워할 만큼의 애국자였다. 고국 이야기만 나오면 단군왕검에서부터, 배달민족에, 삼일운동 등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열정적인 애국심에 감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포니를 첫 수출한다는 뉴스를 읽는 김봉달 씨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주렁주렁 흘러내렸다. 

내가 사는 이 캐나다 땅에 대한민국의 자동차가 굴러다닌다… 

내 가게 앞에 태극기를 단 자동차를 세워 놓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캐나다에서 현대차를 사는 최초의 코리언 캐나디안이 될 것이야..

마음속에 결정을 내린 김봉달 씨는 감격에 겨워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드디어 토론토에 어느 딜러가 최초로 포니를 판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드디어 그날… 밤잠까지 설치면서 일어난 김봉달 씨 가게 문을 여는 둥 마는 둥 만사를 제치고 딜러로 달려갔다. 쇼룸 안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반짝이는 포니자동차, 대한민국의 자동차. 

아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 쿵짝작…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던 수천만의 함성은 이미 39여 년 전 토론토의 한 자동차 딜러샵에서 일등 애국자 김봉달 씨에 의해 최초로 울려졌음을 누가 알리오.... 글썽이는 눈물을 억제하며 흥정이고 뭐고 급히 서둘러 서류에 사인 하고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차를 넘겨받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벅찬 가슴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고 안달하며 뜬 눈으로 지새운 며칠 후 드디어 자동차가 준비되었다는 딜러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가 드디어 차를 받았다.

삐까 번쩍이는 새 포니 차에 올라탄 김봉달 씨, 보리 고개 걱정이 어제 같았던 고국이 이렇게 훌륭한 자동차를 만들다니. 

감격에 사무쳐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대-한-민-국을 억지로 참아가며 딱히 갈 데도 없는데 나이아가라 폭포 하이웨이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국도 영스트리트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입 꼬리가 귀에 걸릴 만큼의 큰 미소를 짓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펑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김봉달 씨. 조수석의 유리창이 박살 나 차 안으로 유리 조각들이 와르르 떨어져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한 김봉달 씨,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상황을 살폈다. 

한적한 시간대라 주위에는 자동차나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얼른 밖으로 나가 차를 살펴보았다. 돌에 맞거나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무슨 새 차가 이래!” 하며 화를 머리끝까지 내겠지만 김봉달 씨의 생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급히 다시 차에 오른 그는 더 한적한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 차를 세우고는 누가 혹시 볼세라 주위를 살피면서 남아 있는 유리조각들을 조심스레 떼어 냈다. 그리고 깨어진 조각들을 정성스레 봉투에 담아 트렁크에 넣고는 지도를 꺼내 자동차 딜러로 가는 길을 찬찬히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빤히 아는 길이지만 그 길로 가지 않고 한적한 골목길만을 골라서 가기로 했다. 

왜? 혹시 누가 볼세라 알세라. 

“저게 코리아에서 새로 들어온 포니라는 차 아냐? 아니 근데 유리창이 벌써 박살 났잖아. 저거 완전히 똥차 아냐? “라고 말할까 봐.. 

콩당거리는 가슴 조리며 아무와도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운전해 딜러로 돌아와 뒷마당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쇼룸 안으로 들어온 넘버원 애국자 김봉달 씨. 딜러에 가서도 화를 내긴커녕 행여나 다른 손님이 들을 가봐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던 김봉달 씨.. 


39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토론토 거리엔 포니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대신 고급스러운 제네시스, 소나타, 산타페 등등이 도로를 채우고 있다. 세월과 함께 우리 곁에서 사라진 넘버원 애국자 김봉달 씨, 하지만 그의 전설적인 포니 사건은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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