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의원은 억울하다

by 이일우

2023년 9월 서울시 OO구의회에서는 지방의회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구청장이 구의회 사무국에 파견된 직원 12명 전원을 구청으로 복귀시켰기 때문이다. 구의회 의장선출을 둘러싸고 장기간 파행이 계속되면서 구의회 운영 중단으로 인한 유휴 인력을 구 민생현안 업무에 투입하고 구의회가 정상화되면 다시 직원을 파견해 업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구청장의 방침이었다. OO구의회 사무국의 인력은 국장 1명과 전문위원 3명 등 모두 3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원의 37%에 달하는 직원이 구청으로 복귀하면서 구의회 행정 업무는 마비됐다. 당시 언론은 운전직이 행정업무를 하고 속기사가 홍보업무를 한다며 의회사무국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꼬집어 대느라 바빴다. 무려 15개월 동안이나 구의회 의사일정이 중단된 것도 드문 일이었지만 나는 의회사무기구의 행정직 공무원을 구청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착잡했다. 2022년 1월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지방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됐다던 말이 무색했다. 얼핏 보면 이런 상황이 구의회 의원만의 책임이라고 속단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


구의회 3곳에서 8년, 시의회에서 1년가량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전국의 모든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제68조에 따라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의 자치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지방의회의원이 아닌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위원'을 두는데 전문위원은 위원회에서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 그 밖의 소관 사항과 관련하여 검토보고 및 관련 자료의 수집ㆍ조사ㆍ연구를 한다. 전문위원은 국회, 시·도의회, 시·군·구의회에 이르기까지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필수적인 직책이다. 넓은 의미에서 의회사무국이 의원들의 포괄적인 보좌관이라면 전문위원은 의원의 가장 가까이에서 정책 보좌관 역할을 한다. 전문위원은 의회에 상정되는 조례안과 예산안 등 모든 안건을 미리 검토하고 그 결과를 의원들과 공유하며 의원이 발의하는 안건을 함께 다듬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하려고 작정하면 무궁무진한 역할이 있는 게 전문위원이다. 지방의회의원도 엄연한 선출직 정치인이다. 각종 행사나 회의 참석, 민원처리, 지역구 활동으로 바빠서 안건을 심도있게 검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회부된 안건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는 의원들에게 마치 가뭄의 단비와 같다.


전문위원의 신분은 선발과정과 특성에 따라 임기제 공무원, 행정직 공무원, 별정직 공무원으로 나뉜다. 전국 시‧군‧구의회 전문위원의 대부분은 행정직이나 별정직 공무원이고 이들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소위 '늘공(늘 공무원)'이다. 별정직은 2년 내외마다 보직을 바꾸는 순환보직 대상이 아니고 비서직, 전문위원 등과 같은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점이 행정직과 다르다. 임기제 공무원은 쉽게 말해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일정 요건을 갖추고 서류전형과 면접시험에 합격하면 2년이나 3년 임기로 임용하는 엄연한 공무원 신분이고 범죄에 연루되거나 업무성과가 계속 저조하지 않은 한 근로계약은 연장되는 것이 보통이다. 2025년 7월 말 기준으로 지방의회 전문위원의 정수는 기초의회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 별표5에 따라 의원 수에 비례해서 5급과 6급 전문위원으로 구성된다. 전문위원의 직급별 정원은 총 정수의 범위에서 직급간 상호조정이 가능하나 5급의 정원은 위 규정의 정수를 초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구의원 정수가 15명인 구의회라면 5급 전문위원 2명과 6급 전문위원 1명을 둘 수 있다. 서울의 25개 구의회 사무국의 경우 늘공 전문위원이 다수이고 가물에 콩 나듯 어공이 1명 내외로 섞여 있는데 군의회와 시의회와 같은 기초의회는 대부분 늘공 전문위원일 가능성이 크다. 오랜 기간 행정직 공무원이 차지해온 귀한 5급 자리를 외부에서 굴러온(?) 임기제 공무원에게 쉽게 내줄리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방의회 전문위원의 직급과 정원조차 시행령으로 통제받는 것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 시행 후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공 전문위원으로서 필자가 가장 신경썼던 일은 의원에게 좋은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의원에게 좋은 검토보고서'란 쉽게 말해 의원이 발언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즉 의원들이 상임위 안건심사 과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안건의 착안 사항이 풍부하게 담겨있는 보고서라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전문위원은 국회부터 중앙행정기관 홈페이지,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회예산정책처, 지자체 홈페이지, 학술논문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자료조사에 발품을 팔아야 한다. 행정직 전문위원으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엊그제까지 구청에서 근무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 구의회 사무국으로 발령받은 행정직 전문위원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구청의 동료, 선후배 직원들을 외면한 채 구청장이 제출한 안건을 비판하는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겠는가. 물론 행정직 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에 소홀한 데에는 이것 말고도 지방의회 자체에 대한 무관심, 승진에 별 영양가(?)도 없는 전문위원 업무에 대한 회의감 등도 있다. 기초자치단체장 제출 안건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의 판단 부분이 불과 두세 단락 정도로 짧은 이유이다. 이렇듯 9급 또는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고 똑같은 구청이나 군청, 시청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한 늘공에게 지방의회의 어공 전문위원은 갑자기 '굴러온 돌'처럼 생뚱맞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지방의회가 시청이나 구청, 군청의 행정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관이다 보니 늘공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감시하는 지방의원을 돕는 어공 전문위원이 당연히 이뻐 보일 리가 없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는 늘공이 태생적으로 악마(?)라서 그렇다기보다 의회와 집행기관의 역할이 창과 방패처럼 달라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그래서 의회사무국(과) 직원들은 구의회 5급 행정직 전문위원을 가리켜 ‘과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일이 자연스럽다. 전문위원 발령 전까지 집행기관에서 과장이었거나 의회사무국을 떠나면 과장이 될 사람이니까.


주민 인구가 32만 명 내외인 서울시 A구 구청장은 대략 1,200여 명의 공무원 조직을 거느린다. 인구수와 동(洞)의 개수 등에 따라 A구의회의 구의원은 15명 내외이고 의회사무국은 30명 내외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게다가 운전직, 방호직, 비서직, 속기직, 사진사 등의 직원을 제외하면 A구의회 사무국에서 구의원을 정책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직원은 전문위원 3명(5급 2명, 6급 1명)과 의원 2명당 1명씩 배정된 정책지원관이 전부이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1,200명 VS. 4명. 정책적인 가용인력만 놓고 보면 기초의회의 경우 양적, 질적 측면에서 구청장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의정활동 경험이 적은 '해맑은' 초선 구의원은 임기 중반이 지나도록 20∼30년 경력의 늘공에게 휘둘리기 쉽다. 예를 들면 구의원이 주민들의 요구로 어떤 조례를 만들고 싶을 때 구청의 담당부서 직원은 그 조례가 불필요한 이유부터 설명하기 일쑤다. 새로운 조례가 제정되면 그 조례를 근거로 소관부서의 법적 책임이나 의무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담당자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안 하던 일이 새로 생기는 거니까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늘공 전문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구청 부서의 입장을 두둔하거나 아예 뒤로 빠져서 관망했다. 어차피 의원을 두둔하자니 '구의회로 가더니 사람이 변했다'는 구청 동료나 후배 직원의 핀잔과 비아냥을 들을 테고 무조건 부서의 입장만 두둔하면 조례를 발의한 의원에게 찍힐 것 같으니까. 물론 의원이 실적만을 의식해 무책임하게 조례를 발의하는 '참을 수 없는 조례 발의의 가벼움'도 적지 않다. 발의 의원이 조례안의 주요 내용도 모른다거나 심사과정에서 동료의원의 질의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상황이 그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구의회의 위상을 높인다며 감히(?) 구청장이 제출한 조례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여겨지기 일쑤다. 여러 해가 바뀌어도 지방의회 업무를 대하는 이런 관점 차이는 좁혀질 기미가 없었다. 정년 퇴임을 7∼8개월쯤 앞둔 어느 행정직 전문위원이 내게 했던 충고를 잊을 수가 없다.


"이일우 전문위원님, 까놓고 말해서 내가 퇴직하면 누구랑 술을 더 마실 것 같아요? 구의원들? 아니죠. 구청에 있는 직원들이지요."


아무리 말년(?)이라지만 노골적으로 구청 입장만 두둔하는 그가 나는 몹시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한참을 고민했던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구의회 입장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감히(?) 면전에서 꺼냈고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꾸한 것이다. 물론 전국의 모든 늘공 전문위원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공 전문위원 역시 각양각색이듯 말이다. 이런 의회사무기구의 현실로 인해 집행기관으로 통칭되는 관료집단의 의견이 지방의회의원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 대변될 수밖에 없다. 주민의 대표인 지방의회의원이 원내 의정활동 과정에서 온통 늘공 위주의 보좌를 통해 관료주의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것이다. 기초의회일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회사무기구의 인력구성 자체가 그렇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수준이 낮은 지방의회의원 문제'는 지방의회에 무관심한 유권자와 공무원 그리고 무능한 지방의회의원을 공천한 국회의원과 같은 3자의 짬짜미 때문이라고 본다. 즉 원내 의정활동에 무지한 지방의회의원이 있다면 이는 지방의회에 무관심한 유권자와 국회의원이 만든 합작품이다. 지방의회가 진정으로 주민들의 눈높이로 바뀌길 원하는가? 쉬운 일부터 해보자. 내가 사는 동네의 구의원과 시의원의 이름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상임위와 본회의 회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은 못 하더라도 구의원과 시의원의 주요 원내 의정활동 내용 정도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켜본 결과를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유권자인 주민이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지방의회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방의회의원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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