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스럽다

by 이일우

2025년 2월경으로 기억한다. 동작구의회가 신청사로 이사하기 몇 개월을 앞두고 의회사무국의 서무주임이 직원 단톡방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임시회로 바쁘신 중에 전 직원 대상으로 구의회 신청사 다목적실 명칭 관련 의견을 구하자고 합니다. 다목적실의 경우 각종 의회 행사를 하는 목적으로 40∼50여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며, 토론회, 구민표창 수여식 등을 할 예정인 공간입니다.

이에 현재 다목적실의 명칭이 딱딱한 느낌이 있어 직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받고자 하오니 내일 오전10시까지 다목적실의 명칭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최종 선정된 분께는 자그마한 선물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 올린 서무주임의 글엔 하루 동안 접수된 명칭이 16개이고 14시부터 투표 예정임을 알리면서 순위별 상품도 공개됐다. 1등이 5만원, 2등은 3만원, 3등이 2만원인 별다방 기프티콘이었다. 16시 30분경 투표가 종료되었고 곧바로 공개된 투표 결과를 보자마자 우리는 빵 터졌다. 1위가 다름 아닌 ‘다목적실’이었으니까. 이건 뭐지. 투표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거봐, 상금이 적다고 했잖아. 투표 결과를 두고 직원들끼리 잠시 이러쿵저러쿵 웅성웅성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다 사무실 안은 다시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난 이날의 상황을 ‘공무원스럽다’로 규정하고 싶다. 추측하건대 직원들은 신청사 다목적실의 명칭에 별 관심이 없었다. 명칭이 뭐가 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며, 기껏 5만원 받으려고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다. 꼭 내가 아니어도 튀고 싶은 누군가가 적당한(?) 명칭을 제안하겠지. 에잇,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그렇다. 18년의 임기제 공무원 경험상 공무원 조직은 승진이나 포상, 징계 등의 문제가 아니면 좀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이 분명해야 한번 움직여 볼까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위에 든 사례도 만일 상금이 10배 이상으로 ‘당근’이 컸거나 반대로 표를 적게 받은 직원은 일직이나 보안근무를 시키겠다는 ‘채찍’이 있었다면 투표 결과는 달라졌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직원들의 반발과 별개로 말이다. 나는 평소 공무원 집단을 ‘레고 블록’과 같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민간과 비교할 때 개개인은 스펙이나 개인기가 뛰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팀단위, 부서단위, 국단위로 궁리하면 마치 레고 블록 한두 개로는 만들 수 없는 도로나 교량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집단 지성을 발휘한다. 법과 규정이 허용한 권한으로 하는 일이지만 단순히 비유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만큼 관료집단은 정년이 보장되는 공동운명체라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그래서 구성원 중 누군가가 튀는 것을 의아해하거나 불편해한다.


공무원 집단의 특성을 보여주는 경험을 한 가지 더 소개하면 이렇다. 권익위는 세종시에 있는 정부청사로 옮기기 전까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20층 빌딩의 여러 층을 임차해 사용했다. 군데군데 10개 층을 권익위가 사용하고 나머지 10개 층은 당시 SK커뮤니케이션즈가 사용했다. 그 빌딩엔 엘리베이터가 모두 4개인데 권익위와 SK가 두 개씩 나눠서 이용했다. 지금도 재밌는 점은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빌딩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의 복장만 봐도 그 사람이 권익위 소속인지 SK커뮤니케이션즈 소속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권익위 직원들은 대체로 짙은 회색이나 검정색 정장 차림이 많았다. 헤어스타일도 단정한 단발 아니면 긴 생머리 정도랄까. 반면 SK커뮤니케이션즈 직원들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함 자체였다. 무지개색을 하나씩 뽑아서 만든 것 같은 원색 셔츠나 바지는 흔했고 반바지나 중간중간이 헤진 빈티지룩 청바지도 종종 눈에 띄었다. 당시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는 40대 중반의 임원이 나왔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복장에 특정한 정답이 따로 있겠는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되고 동료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2025년 7월 현재,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반바지 복장을 허용했다는 서울의 어느 구청의 소식이 아직도 뉴스가 될 정도이다. 좌석 배치부터 복장에 이르기까지 여느 집단과 다른 공무원만의 독특함이 있다.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를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실험이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참 공무원스럽네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썩 유쾌하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스럽다’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복지부동, 영혼이 없는, 고지식한, 철밥통 등의 부정적인 표현이 먼저 연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가늘고 긴’ 관료집단의 선택이 낳은 이미지가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2025년 6월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포함 평균 2.75점에 그쳐, 전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불확실한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수십 대 일까지 치솟는 현실은 별개라고 본다.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은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은 그 인간도 정년이 보장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 국민의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결국 내 자식이 공무원 되는 것은 좋아도 보통명사인 공무원 집단에 대해선 강한 불신을 가진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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