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 나태주(1945∼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지방의회도 그렇다)
첫 책을 출간하고 지방의회나 인재개발원 등에서 교육할 때마다 내 PPT 자료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다. 가급적이면 수강생들이 이 시를 함께 낭송하도록 한 다음 시의 마지막 줄인 ‘너도 그렇다’가 끝날 즈음 괄호 안의 문장이 애니메이션 효과로 화면에 보이면 내가 ‘지방의회도 그렇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풀꽃이든 지방의회든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지방의회를 혐오한다면 나도 방법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TV나 신문에서 본 자극적인 기사만으로 마치 지방의회를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끄럽지만 지방의회로 이직하기 전까지 나도 그랬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지방의회까지 챙겨보랴. 국회의원들 싸우는 장면도 신물이 나는데…….’라고 생각했다. 10년 가까이 내부자로 좌충우돌하다 보니 지방의회에 대한 이런 막연한 혐오감이나 선입견이 한편으로 이해는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선입견을 조금만 걷어내면 지방의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텐데…….’싶은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가끔 내 첫 책에 저자 사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풀뿌리 지방자치’ 대신 ‘지방의회는 풀꽃입니다’라고 적어주는 이유이다.
2022년 인기리에 방영된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빼놓지 않고 본 적이 있다. 연쇄살인범들의 마음 속을 치열하게 들여다봐야 했던 프로파일러의 이야기가 내 시선을 줄곧 사로잡았다. 결은 다르지만 전문위원도 지방의원의 마음과 욕망을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지방의원의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소통하는 직위가 전문위원이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서 배우 김남길이 연기했던 인물의 실제 모델인 권일용 교수를 2024년 가을 무렵 본 적이 있다. 당시 노량진에 있던 동작구의회에서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인 CTS 아트홀(기독교TV)에서 열린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PD의 북토크 행사였다. 내 눈엔 게스트로 나온 권일용 교수만 보였는데, 국내에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2000년부터 그 직업을 어떻게 견뎠고 전문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는지 가장 궁금했다. 분야만 다를 뿐 구의회 임기제 전문위원도 기초지자체에서 대체로 냉소와 모멸감을 겪는 처지다 보니 내심 위로와 격려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오직 (사건의) 피해자만 생각해라. 그러면 (현장에서) 힘들 때 견딜 수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권일용 교수가 힘들어하는 후배 프로파일러와 김남길 배우에게 실제로 했다는 위 조언을 듣고 나는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마치 나에게 해주는 격려처럼 들렸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면서 올려다 본 파란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것 같다. 이 밖에도 나의 직업적인 고민으로는 소통의 태도와 방법이 있다.
"거칠게 보아서 글쓰기에는 일기, 편지, 연애편지 세 단계가 있다. (중략) 편지(보고서) 단계는 맥락을 잘 이해하고 중요한 것들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를 인정하고 동의하는 수준이면 된다. 그러나 연애편지는 다르다. 수신인을 감동시켜야 한다. 다루는 주제를 깊이 사랑해야 가능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소한 것까지 알게 된다. 대상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를 넘어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신인의 취향과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어법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평소 좋아하는 강창래 작가의 <위반하는 글쓰기 :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글쓰기 기술>의 내용 중 일부이다. 강창래 작가는 결국 ‘글이 얼마나 일방적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쓰기의 단계를 나눴다고 본다. 나도 안건 검토보고서나 짧은 보고자료를 작성할 때, 심지어 업무 관계자와 차를 마실 때도 내 표현이 상대방의 처지나 욕구와 무관한지 살피곤 한다. 똑같은 메시지라도 상대의 처지, 관심사, 성격, 취향 등에 맞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는 상대의 독특한 ‘맥락’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내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쿵푸팬더같은 외모와 달리 MBTI 성격유형의 대문자 F(Feeling)라고 힐 정도로 소심하고 예민하다 보니 가능한 것 같다. 단순히 남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에서 별문제 없이 소통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말하고 듣기를 반복한다. 특정인을 내식대로 단정한 적도 부지기수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 40대 후반쯤이었다. 마찬가지로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순간도 많다. 이번 책이 남모르게 고군분투하는 전국 지방의회의 의원과 공무원들을 향한 나의 연애편지로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당신이 숨이 막힐 것처럼 힘든 것처럼 나도 그랬다고 말이다. 최인아 대표의 말처럼 애쓰고 애쓴 시간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내 연애편지의 마지막 문장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지방의회는 풀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