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시간 15]

Q. 나는 어떤 욕구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는가?

by 연하

14편에서 내려놓음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았다. 짐을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나의 욕구들이었다


‘해야 한다’에 가려진 ‘하고 싶다’


작년부터 나를 알아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 역사 쓰기를 쓰고, 최근에 91일간 매일 하나의 질문을 밤 12시에 받고 하루 종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니 정말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은 F학점이다. 취향, 성격, 성향, 기질, 휴식 방법 등 숨 쉬듯 자연스럽게 아는 것들을 질문이 들어오면 갑자기 텅 비어 버린다.

너무 억누른 나머지, 길들여진 새장 속의 새처럼, 문을 열어줘도 나갈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특히나 나의 욕구를 느끼는 능력은 수십 년 동안 휴업상태다.


왜 그랬을까? ‘해야 하는 일’에 가려진 채로 늘 책임감에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식으로서, 가족을 위해, 엄마로서, 환자를 위해, 배워야 할 일, 미리 준비해야 할 일. 삶은 늘 ‘해야 한다’로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다’는 감정은 금세 억눌렀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중에,” “이것 먼저,” “지금은 때가 아니야” 이런 말로 내 욕구를 돌려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월 참 빠르다. 수십 년이 순간처럼 빠르게 지나버렸다.


나를 회복시킨 질문의 발견


61일 차에, 몸이 크게 지쳐 더는 버티기 어려운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요즘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나는 놀랐다.


책임감과 목표, 성취에 몰두해 살다 보니 정작 ‘나의 감정’과 ‘내 몸의 욕구’를 묻는 일을 너무 오래 미뤄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지금 내 몸은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피하고 싶은가?

지금 나는 어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지금 나는 어떤 공간에서 쉬고 싶은가?

이 단순한 질문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를 다시 회복시키는 첫 번째 문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했던 욕구: 안전과 쉼


내 안을 들여다보니, 내가 가장 갈망했던 욕구는 안전이었다.

나는 평생 불확실성과 싸우며 살아왔다. 가난의 기억, 책임감, 상처,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안전 욕구를 더욱 증폭시켜 왔다. 그래서 나는 “멈추면 안 돼. 준비해야 해. 대비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보냈다. 일회성 시험으로 끝내지 않고 매일 평가받는 사람처럼 살아온 것이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랬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살았다. 이제는 스스로를 채점하지 않고 하루쯤 쉬어도 괜찮다. 그다음 날 다시 하면 되는 거야.”


그다음에 드러난 억눌린 욕구는 바로 쉼이었다.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쉼이었다. “그때 떠오른 장면들은 모두 ‘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가 나를 부르지 않는 오후

죄책감 없는 누워서 자기

집안이 어수선해도 그냥 눈 감기

목적 없이 느리게 걷기

글 쓰며 숨 쉬는 시간

여유롭게 음미하듯 책을 읽는 시간

이 모든 것이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욕구들이었다.


욕구를 찾으니 삶의 중심이 잡히다


쉼과 안전이 내게 필요한 기본 욕구라는 자각은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욕구를 분명히 하니 불필요한 책임을 줄일 수 있고 , 나와 맞지 않는 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되며 , 나를 공격하는 감정과도 거리 두기가 가능해지고 있다. 부수적으로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삶’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

일중독자로서 일의 완벽성을 추구했었다. 그런데 나의 욕구를 알아가면서 다른 부가 효과가 생겼다. 불필요한 타인의 반응, 과거의 상처,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현재에 좀 더 집중되는 밀도 있는 나날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충만감이 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성향의 일중독자 오빠에게도 말했다. “오빠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라고. 또한 나처럼 살아온 5~60대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내 삶을 다시 내게 데려왔다.

당신에게도 그 질문들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나를 만나는 시간 16]

Q.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나다워지나요?

나다움이란, 책임감의 무게를 벗고 가장 편안하고 에너지가 샘솟는 나 본연의 모습입니다.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이란 어제와는 조금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이니까요.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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