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나다워지나요?
Q.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나다워지나요?
15편에서 나는 ‘욕구’를 회복하는 이야기를 했다.
‘해야 한다’에 가려 잊고 살았던 안전과 쉼을 다시 찾아가며, 삶의 중심을 조금씩 되돌려 놓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가장 나다운 사람일까?
오랫동안 나다움의 기준은 타인의 반응에 있었다. 내 안에는 ‘나’가 없었다. 누군가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성과로 확인해 주고, 칭찬과 격려를 건넬 때 나는 비로소 힘을 얻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과 선생님들의 칭찬 한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직장에서는 업무 성과에 대한 인정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한의사가 된 이후에는 환자들이 회복되어 감사 인사를 건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더 공부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의학을 넘어
양방·재활의학·자연치유의학까지 지식의 외연을 넓혀 갔다.
가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현할 때 기뻤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다.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잘 해결되었다며 “엄마 최고”라고 말해줄 때, 남편이 나를 인정해 줄 때마다 나는 에너지를 충전됨을 느꼈다.
이처럼 나는 성장 지향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다. 노력에 대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성과에서 큰 힘을 얻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성과들이 과연 ‘나’라는 사람을 말해주는 걸까?
50대 초반, 완경을 겪으며 오춘기가 찾아왔다. 누군가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 생각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진짜 내 생각일까?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다르다면, 어느 쪽이 나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는 안개 자욱한 산길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괜히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가던 길마저 잃을까 조심스러웠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 걱정은 사치인 법이다. 그러다 보니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책 한 줄을 읽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취미가 딱 하나뿐인 사람이 그마저도 하지 못하니, 삶의 숨구멍이 막힌 듯했다. 그 시기의 나는 한약과 침, 운동으로 겨우 버텼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나를 알 수 있다’는 달콤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캔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첫 수업은 메타인지였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10년 전부터 가르쳐오던 메타인지 교육법이, 정작 나를 찾는 방법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에게는 적용하면서, 왜 나에게는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61강의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40강쯤 되었을 때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를 계속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아이들에게 메타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치밀하게 관찰했으면서, 나를 아는 일도 똑같이 하면 된다는 생각을 수년 동안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어이없었다.
‘나를 많이 생각하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다’라는 이 깨달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독서 모임에서 자랑까지 했다.
강의를 모두 수강한 후, 나는 ‘현재의 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선택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정체였다. 그래서 자기 역사 쓰기를 시작했고, 이어서 91일간의 매일 글쓰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질문의 글들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이 쌓이자 보이기 시작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비교해 보니, 공통된 패턴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평생 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맡게 되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한다. 방법을 찾으면 숙달될 때까지 반복 연습하고, 능숙해질수록 기쁨은 커진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방법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나는 가장 살아 있음을 느낀다.
또 하나의 패턴, 질문이 풀리는 순간에 큰 기쁨을 느낀다. 일과 관계 속에서 생긴 의문을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공부와 소통을 통해 답을 찾을 때 깊은 만족이 찾아온다. 환자를 보며 더 나은 치료법을 고민할 때,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때마다 나는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가령 환자를 볼 때면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와 관리가 가능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답을 찾아 나선다. 관계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장면을 만나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고민은 일터를 넘어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로도 이어진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곱씹다 문득 이해가 깊어지는 순간, 나는 큰 기쁨을 느낀다.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이 원활해질 때 삶의 즐거움은 더욱 선명해진다.
결국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은 일하고, 공부하고, 질문하고, 나누는 과정 속에 있을 때였다.
이 기쁨을 오래 누리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건강 관리와 열린 마음이다. 나는 평생 일에 대한 공부와 실천을 꾸준히 해왔기에, 공부를 통한 습득력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건강이다. 최근까지 몸을 혹사하며 건강을 많이 잃었으니, 그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던 정신력마저 흔들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혼란도 찾아왔던 것이겠지. 결국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나다움을 찾는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음식, 운동, 스트레스, 수면을 관리하며 그동안 혹사당한 뇌와 몸에 쉼을 주고 있다.
일과 공부, 타인과의 소통으로 이어온 인생이 ‘나’였음을 자각했기에, 이제는 나를 위한 일과 공부, 그리고 나와의 소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본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를 내려놓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차분히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의 뇌가 나만의 통찰과 개념으로 차분히 채워지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수록 나는 더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는, 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지금의 내가 발견한 ‘나답게 산다는 것’의 모습이다.
[나를 만나는 시간 17]
Q. 나를 흔드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이 두려움은 나를 막는 걸까,
아니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나를 가리키는 신호일까?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은 어제와는 조금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매주 토요일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