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시간 19]

Q.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온 단단한 준비들이, 이제 세상을 향해 어떤

by 연하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고 있나요?

지금까지 치열하게 나를 준비해 온 당신, 이제는 그 준비된 에너지를 품고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랫동안 내 삶을 지탱해 온 두 기둥은 ‘대비’와 ‘준비’였다. 나는 늘 이상향을 꿈꿨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1990년대 초, 드라마 <소설 동의보감>에서 보았던 한 장면은 내 인생의 선명한 이정표였다. 스승 유의태가 뱃멀미로 고통받는 허준 어머니의 안색만 보고도 단번에 병증을 꿰뚫어 보던 모습. 그 압도적인 전문성에 매료된 나는 한의학의 사진(四診)인 망문문절(望聞問切)—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는 것—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완벽히 읽어내는 유능한 한의사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었고, 나는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결핍에 시달렸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밤낮없이 지식을 탐닉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도, 두 아이를 키우는 일도 내게는 철저한 전략과 준비가 필요한 과업이었다. 임신 전부터 육아의 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해되지 않는 지점은 공부를 통해 끝내 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답을 찾으면 바로 실천이다.

이렇게 내게 ‘공부를 통한 준비’는 외부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가장 견고한 성벽이었다.


하지만 성벽을 높이 쌓을수록 성 안의 주인은 여위어갔다. 20대 후반부터 이미 과로로 체력이 고갈되었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삼국지』의 전략가처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 고단한 삶이었다. 그렇게 ‘열심히’라는 채찍을 들고 질주하던 어느 날,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멈춰 서서 묻게 되었다.


“그토록 치열하게 달려온 나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질문의 끝에서 만난 것이 아이캔 대학이었다. 324페이지에 달하는 ‘자기 역사 쓰기’를 토해내며 나는 비로소 내 삶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야 했는지, 그 치열함의 밑바탕에 무엇이 있었는지 응시했다. 이어진 아이캔대학 ‘알럽미(I Love Me) 소모임 글쓰기’는 인식의 전환을 넘어 온전한 수용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능력’과 ‘성과’가 아닌,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응시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 해내야만 가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나를 처음으로 마주한 ‘오춘기’의 기적이었다.


5개월간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깨달은 진실은 명확했다. 승리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는 이미 온전하다는 사실이다.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환자의 치유에 기뻐하던 한의사,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했던 어머니, 그리고 이제 AI와 소통하며 인생 3회 차를 설계하는 한 여성. 그 모든 모습 뒤에는 늘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다그치던 내가 서 있었다.


이제 나는 그 채찍을 내려놓고 내 삶의 당당한 주권자가 되기로 했다. 이는 소설 속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신의 본능과 생명력에 충실하며, 매 순간을 축제처럼 살아가는 삶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품어줄 때,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세상으로 흘러갈 여유와 온기가 생겨난다.


최근 아들 친구의 진로 상담이 그러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였지만, 진로를 고민하며 내민 손을 나는 기꺼이 맞잡았다. 내가 가진 지식과 질문을 나누었고, 그 아이 또한 성실한 답변으로 내게 응답했다. 준비된 실력이라는 뼈대 위에 ‘자기 사랑’이라는 따뜻한 근육이 붙자, 나의 언어는 누군가의 삶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봐요.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라는 아이의 답장에서 나는 나의 새로운 목소리를 들었다.


새해 아침, 나로 인해 성장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감사의 문자를 여러 통 받았다. 그 순수한 기쁨의 진동이 내 마음에 닿았을 때,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나를 안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귀하고 눈부신 일이라는 것을. 과거에는 쫓기듯 미친 듯이 지식을 탐구했다면, 이제는 쉼 또한 성장의 일부임을 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일상의 느낌은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적다. 그것은 모두 네 안에 있고, 네 생각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324페이지의 기록을 통해 내가 발견한 행복도 결국 외부의 성취가 아니라 내 안의 빛을 믿는 마음이었다.


나의 인생 3회 차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한 전쟁터가 아니다. 나를 표현하고, 나답게 살아가는 축제의 시간이다.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나’로서 당당히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귀한 선물이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연하야,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너를 사랑해. 그리고 그 단단한 너 자신을 믿으렴.”

이 글을 읽는 작가들도 부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를 만나는 시간 20]

Q. 당신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문장’은 무엇인가요?


치열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증명해 내야 했던 계절을 지나왔습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나를 입증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나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당신은 오늘부터 어떤 이야기로 남은 생의 페이지를 채워가고 싶은 가요?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은 어제와는 조금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매주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어제의 나를 넘어, 내일의 나를 맞이하는 이 시간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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