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글> 스토리 6-2.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16세기 후반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의 에로틱함은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여배우 부재가 가져온 재미있는 현상에 대한 재미있는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에서 여주인공 포샤가 애인 바사니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바사니오는 연인 포샤와의 결혼 자금이 필요해 친구 안토니오를 통해 유대인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사채를 쓰게 됩니다. 샤일록은 계약서에 정해진 날까지 상환하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 부근 살 1파운드를 베어낸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지혜로운 포샤는 문제 해결을 위해 남자 재판관으로 변장하고 “살 1파운드는 계약서에 있지만 살뿐,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다”라는 유명한 판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다시 포샤라는 여성으로 돌아오지요. 이 연극이 끝나면 포샤 역의 배우는 여성 의상을 벗고 일상의 남자로 돌아올 것입니다.
여성 인물의 남장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낭만 희극인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 ≪십이야 Twelfth Night≫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뜻대로 하세요≫에서 로잘린드라는 여주인공은 사랑을 얻기 위해 남자 개니미드로 남장을 하게 되고, ≪십이야≫에서 바이올라라는 여성 인물은 낯선 땅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자 세자리오로 남장을 합니다. 이들은 남장을 통해 모두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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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대중 극장 무대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복장 전환은 현대적인 성 개념의 발현입니다.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일상생활에서나 공식 문서에서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용어를 기존의 섹스(Sex) 대신 젠더(Gender)로 바꿔 쓰기로 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섹스는 전통적이고 고착된 생물학적인 성 구분 용어이고, 젠더는 변동 가능한 문화적인 성 구분 용어입니다.
성을 고착되지 않은 변화 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문화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젠더’가 적절한 용어라고 간주한 것이지요.
셰익스피어는 400여 년 전 이미 성 정체성의 변화 가능성 즉 젠더의 의미를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움직이고 이동하는 성 개념 발현은 여성 배우를 금하던 당시의 공연물 검열 정책상 어쩔 수 없는 방편이기는 하였지만 현대의 성 개념을 예견해 주는 재미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극의 에로틱함은 이렇게 흥미로운 무대 현상으로 발전되기도 하였습니다.
16세기 후반 대중 극장 무대에서의 이러한 현상을 로맨틱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어 추천합니다. 1998년 영화 ≪Shakespeare in Love≫입니다. 귀네스 팰트로, 조셉 파인즈, 콜린 퍼스 등이 출연하여 셰익스피어 시대 대중극장의 무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주면서 여성의 남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랑의 과정을 보여주는 로코 영화입니다.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