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글> 스토리 11. 연극은 영화가 부럽기만 합니다
연극 무대는 태생적으로 기술적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 무대 기술 발전의 목표는 영화에서와 같은 자유로운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등장은 19세기 후반이라 영화적 표현이 무엇인지는 몰랐을 이전에도 연극 무대에는 영화에서와 같은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욕망이 늘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광야를 질주하는 모습 등을 표현하고자 할 때 연극 무대라는 협소한 공간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대단했지요.
궁여지책은 있었습니다. 가령, 19세기쯤 있었던 일입니다. “스크롤링 백드롭(scrolling backdrop)”이라는 장치입니다. 연극 무대 뒤쪽 바닥에 레일을 설치한 뒤 레일 위에 광야 풍경을 그린 긴 장막을 설치합니다. 무대 뒤에서 담당 스텝이 장막을 수평으로 열심히 돌립니다. 카우보이는 제자리에서 말을 탄 듯 액션을 취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설프게나마 광야를 질주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20세기 후반에는 디지털 백드롭이라 해서 장막 대신 뒷면 스크린에 영상을 녹화해서 틀어주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였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영화에서는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연극 무대 기술의 발전은 영화적 표현 욕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극이 영화의 표현 방식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의 예로 조명 효과를 들어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 시대 야외 노천극장에서의 조명은 오로지 자연광뿐이었고 이따금 횃불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인공조명 효과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17세기 후반 실내 극장에서는 조명이 가장 큰 문제 거리의 하나로 대두되었습니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조명은 기름 램프나 촛불뿐이었습니다. 이런 약한 조명은 금속판이나 거울 등의 반사 장치를 동원해 좀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장면에 따라 필요한 조명 조절은 불가능했습니다.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가스 조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가스 분출의 양에 따라 빛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대 위 화염이 관극을 방해하였을 뿐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화재의 위험이었고 실제로 이러한 조명기로 인해 여러 극장들이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습니다.
19세기 초중반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석회등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밝기 효과 외 다양한 색채를 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1879년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일상생활에서 뿐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획기적이었습니다. 이전의 조명보다 훨씬 조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역할이 다른 조명기구들을 여러 곳에 배치하여 다양한 조명 효과를 가능하게 했지요. 천장, 무대 발끝이나 측면 등에 위치한 조명 기구, 스폿 라이트, 이동 조명기 등은 무대에서의 비언어적 효과를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술이 발달되어있던 19세기말에 등장한 영화는 이미 다양한 표현 효과가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점은 영화가 연극에 앞서게 되는 중요한 기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