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글> 스토리 3. 가톨릭 성당은 연극무대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유럽 성당 탐방기인 것은 종교와 연극의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습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기에 구교와 신교는 종교적 교리와 정치적 상황을 놓고 대립했습니다. 이 점이 주 갈등입니다.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연극을 놓고도 대립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 특히 급진주의 청교도는 연극을 극렬히 반대하였습니다.
개신교는 구교의 예배당, 지금으로 말하면 성당을 연극 극장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성당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구교는 신앙심 함양을 위해 성상을 숭배합니다. 가톨릭 성당 밖에서부터 수많은 조각상들을 목격할 수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성인들의 성상들과 성화들이 촘촘히 장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성당의 십자가에는 예수의 상이 반드시 조각되어 있지요. 마치 여러 장치와 소도구들이 배치된 연극 무대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예배 절차도 다분히 연극적입니다. 사제들과 복사들은 특별한 법복을 입고 목장을 들고 행진하듯 입장하여 미사를 인도합니다. 미사 과정도 다양한 액션들로 이뤄집니다. 신도들은 무릎을 꿇기도 일어서기도 하고, 성호를 긋고, 라틴어 성구를 암송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액션을 취합니다. 신교도 눈에 성당은 연극 극장처럼 보였습니다.
개신교 교회 모습을 상상해 보지요. 물론 16세기와 지금의 교회 모습은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 교리는 같습니다. 개신교는 우상타파를 외칩니다. 교회 내외부의 장식은 가능한 배제 합니다. 성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십자가에는 예수의 형상이 없습니다. 예배 절차도 단순합니다. 물론 성당 안팎의 모습이 청교도의 연극 혐오 명분의 전부는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주원인이었습니다.
16세기 신교와 구교의 갈등 와중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이 구교를 반대하듯 연극을 반대하였다는 현상이 이해되리라 싶습니다.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셰익스피어가 극작 활동을 시작한 시기로 연극의 융성기였습니다. 그러나 신교도 성직자들이 당시의 대중극장들을 찾아다니며 초기 기독교가 그랬듯 사람들에게 또다시 연극 극장을 ”사탄의 회당“이라 비난하며 연극을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청교도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은 1642년 혁명을 일으킨 후 정권을 잡자 바로 극장을 폐쇄하였습니다.
연극과 종교의 관계는 참으로 다사다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