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글> 스토리 4. 중세 말 교회에서 연극이 부활합니다
기독교 영향력 확장으로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 연극은 설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상설 극장은 사라지고 기껏 소소한 떠돌이 유랑극단 등만이 장터나 일부 귀족 집안에서 품을 팔면서 겨우 연극의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국제관계에서 오늘의 적이 내일의 적이 되리라는 법이 없다는 속설처럼 문화계도 그러한가 봅니다. 역사는 돌고 돌지요.
연극의 암흑기를 조장했던 기독교가 중세 말기 연극 부활의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9세기경까지의 교회 예배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근엄한 예복을 입은 성직자들의 손에는 라틴어 성경이 들려있었습니다. 대부분 문맹인 평신도들은 값비싼 성경을 구매할 여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 해도 라틴어를 읽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성직자의 일방통행적인 설교를 통해서만 성경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하는 성직자들도 그저 듣기만 하는 신도들도 모두 지루했으리라 싶습니다.
중세 말기 교회에서 일어난 모습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한 성직자가 지루함을 타개할 묘안을 내게 됩니다. 성가대에게 그날 설교에 맞는 성가를 부르도록 요청합니다. 신도들의 호응이 예상보다 컸습니다. 예배가 조금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한 걸음 더 나가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성가대에 노래에 맞는 율동을 부탁합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예배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합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절기에 맞춰 성직자들은 직접 대본을 쓰고 강단에서 연극을 공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대략 10세기경 유럽 특히 영국에서 시작된 “교회 예배극”입니다.
전례 없는 성공에 성직자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 강단에서 공연하던 연극을 교회 밖으로 가지고 갈 계획을 세웁니다. 이번에는 성직자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공연 주체가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배우를 하고 누가 무대를 만들고 누가 홍보를 하였을까요? 일종의 극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가장 적절한 방법은 당시 일반인들이 직업상 속해있던 상인조합 즉 길드를 극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시스템이 촘촘히 갖춰져 있던 길드에서 연극을 기획하고 조합원들이 배우나 스텝이 된다면 가장 손쉬운 일이었겠지요.
이렇게 해서 14세기 경 “상인조합연쇄극 Mystery Cycle Plays”이라는 진일보된 연극 형태가 세상 빛을 보게 됩니다.
상인조합연쇄극은 제빵업, 양조업, 조선업 등 상인조합을 중심으로 행해진 연극입니다. “연쇄극”이라는 의미는 정해진 장소에서 기다리면 여러 상인조합 극단들이 찾아와 순서대로 연이어 공연을 한다는 뜻입니다.
축제일이 되면 그 도시 대부분의 상인조합들이 참여합니다. 상설 극장이 없던 시절이라 관객들은 광장, 교회 앞, 시장터 등 정해진 장소에서 기다립니다. 그러면 A라는 조합이 찾아와 공연을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잠시 기다리면 B라는 조합이 그곳으로 와 공연을 한 뒤 역시 다음 장소로 떠납니다. 이어 C라는 조합이 찾아오고 떠나고 하는 그런 식이라는 점에서 연쇄극이라 합니다.
그래서 무대는 이동 가능한 마차였고 이동하는 연쇄 공연이 가능했습니다. 주 무대는 마차 위이고 마차 주변에서 곁가지 공연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연극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의 스토리였습니다. 그렇다고 조합들이 무작위로 성경의 스토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업은 신의 소명이라는 교리에 따라 각 길드에 맞는 스토리를 택했습니다. 가령, 조선업 길드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맡았을 것이고, 양조업 길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에피소드를 맡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스토리들의 기본 틀은 성경을 따르지만 성경에 나오지 않는 코믹 하거나 비장한 곁가지 스토리를 덧붙이기도 하여 관객들의 흥미를 더 해주었습니다. 교회 성직자들의 고리타분한 연극에 비해 훨씬 사실적이고 전문적이었지요.
다양한 픽션이 가미된 내용, 사실적인 연기, 나름의 참신한 첨단 무대 장치들이 상인조합연쇄극을 이전의 교회 예배극에서 진일보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에게 연극다운 연극의 재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지요. 14세기, 15세기의 현상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16세기가 드디어 연극의 전성기, 셰익스피어의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