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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숙 Nov 08. 2023

꽃피는 봄이오면 (10)

2023 아르코 선정작 희곡부문 

마지막 장






빈 무대 시어머니 혼자 마루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린다.





시어머니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고모 등장하며 시어머니 옆에 앉는다.




고모           언니도 적적한가 보네요.


시어머니       가들이 없다꼬 집이 절간 같네요.


고모           뭐 언제는 가들 시집보낸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막상 없으니 썰렁하고 

적적하고 그라지요…


시어머니     내 좋자고 꽃같이 고운 그것들 발목 잡으면 안되지요.

내일모레 저승길 앞둔 늙은 내하고 어디 똑같아요? 


내가 안 나서마 시어매 시고모 시집살이

하다 죽을 때까정 이 집에서 망부석 될 낀데…  그 꼴을 우째 보라꼬요.



고모         그래가 인제 우얄라꼬…

시집이고 뭐고 여서 늙어 죽을 때까정 있을 작정인가 보던데.



시어머니      그라는 고모는요? 고모도 재혼해야 되제. 이카고 세월만 보내면 우얄라꼬 그래요?



고모           지도 여서 늙어 죽을때까정 언니 옆에 있을 작정이라요.



시어머니     아유, 징글징글한 소리 하지도 말아요. 갈 사람은 얼른 가야제. 

다 늙고 힘 빠진 늙은이 옆에서 그카는 거 아이라요.



고모         나는 인제 남자라 카면 징글징글해요. 

내가 짐 싸서 일로 올 찍에 결심했다 아임니꺼. 

다시는 고추 달린 것들하고는 엮이지 말자. 

내 팔자가 더러버가 그런가, 

엮이는 것들마다 우예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놈들 밖에는 없는지. 

내가 지 봉인지 지 밥인지… 

돈 뜯어낼 궁리만 하고 

안 해주모, 사흘 멀다 하고 주먹질에…

 에고 언니 팔자나 내 팔자나 남자 복은 없는기라요.



시어머니      고모도 참 그런 일이면 진작 정리하고 내리오지 그랬으요. 



고모          염치가 있어야지요…

이누무 팔자는 우째 되가 예나 지금이나 

언니 힘들게만 하는지. 양심 없는 짓인거 알믄서 아무 데도 이 한 몸 맡길 때가 없드라고예. 



시어머니      잘 왔어요. 우리, 가들 다 시집보내고 둘이 서로 의지하믄서 그래 살아요.



고모          언니... 





따르릉 전화벨 소리 


시어머니 전화를 받는다.




시어머니       여보세요? 

그래 야이야. 

어… 큰아는… 

그래… 여는 신경 쓰지 마라. 


고모하고 둘이 잘 있으이까네. 

너거나 재미나게 놀다 오니라. 


그래…  큰아 잘 보고… 내일 올 끼제? 천천히 조심히 내려오니라.

… 

오야…  

너거도… 

어이.



고모           언니, 우리 수제비 해무까? 

감자 송송 썰어 넣고 뜨끈뜨끈한 수제비.



시어머니       조오치요! 멸치똥 까가 육수 내줄테이께.



고모           카모 수제비 뜨게 밀가루 반죽해야게따. 




시어머니 고모 주방으로 들어간다.




빈 무대는 다시 어두워진다. 

시간이 흐른다.


무대 다시 환하게 밝아진다.


작은며느리 주방에서 제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나온다. 



큰며느리 사과를 먹으면서 따라 나온다. 



작은며느리 마루에 앉는다.



큰며느리도 그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고모 뒤이어 과일바구니를 들고나온다.




고모           제사 지낼 낀데 자꾸 먹으모 우야노? 



작은며느리     아주버님도 형님 드시는 거는 좋아하실 낀데예.



고모           나도 배가 고파가 하는 말이다.




시어머니 밤과 과도를 가지고 나온다.




시어머니      길 건너 빵집 새로 생깄던데, 

고모 그칼 줄 알고 빵 사다놨어요.

아직 제사도 멀었는데 고모가 그때까지 기다릴 사람도 아이고 



고모            역시 내 생각해주는 거는 우리 언니밖에 없다.



시어머니        고모 방에 가봐요.



고모            카모 하나만 무 보까~





고모 방으로 들어간다.


시어머니 작은며느리 옆에 앉아서 밤을 깎는다.




작은며느리      어머니, 시간 참 잘 가네요.


시어머니        그래, 벌써 일 년이다. 


작은며느리      작년까지만 해도 형님하고 셋이서 준비했는데

그동안 제가 맨날 늦게 와가 형님 고생 마이 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제가 해야지요.



옆에서 사과 먹고 앉아 있는 큰며느리



시어머니         고맙다. 니가 아니었으마 

내도 참 많이 힘들었을 낀데, 

니가 옆에 있어가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그래도 내 맘은 변함이 없다. 

내 좋자고 니끼고 있을 생각 털끝맨치도 없으이까네 임자 나서면 니도 가는 기다. 

알았제




순이네 막걸리를 들고 들어온다.




순이네           뭐 이래 고소한 냄새가 나싸.



시어머니         어여 와요.



순이네           울 큰따님은 뭘 그래 맛나게 드실꼬?



큰며느리         안냐세요~. 오늘은 준이하고 빈이하고 오는 날이다.



순이네           아이고, 시근은 멀쩡하네. 



작은며느리       어서 오세요. 막걸리 일로 주이소.



순이네           이 댁 고모는 코빼기도 안 보이네.




고모 방에서 나온다. 




고모             이 댁 고모는 왜 찾아싸? 



순이네          희한하지요, 미운 정이 들라카나, 이 집 마당에 들어설 때부터 땍땍 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모 인제는 이상하다 카이. 




치킨집 사장 치킨을 가지고 등장한다.




치킨집 사장    통닭이 왔어요! 갓 튀긴 노릇노릇한 통닭이 왔어요~



시어머니      어여 와요!



작은며느리     어서 오세요.



큰며느리      통닭이 왔다. 통닭! 준이 빈이가 자다가도 찾는 게 통닭이다.   통닭은 꼬꼬치킨이 제일 맛있다. 통닭이 왔어요. 통닭! 



시어머니       참말로 희한하제. 자가 하는 말을 가만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고모           치매를 가장한 치밀한 고난도의 연기라고 본다.



순이네         그게 뭔 소리고?



고모           가끔 내한테 뼈있는 소리를 하는데, 치매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시어머니       고만하이소, 내도 참말로 그랬으모 좋겠네.



고모           기다리 보라카이, 내 말이 참말인지 부러 하는 말인지.



시어머니       거 시답지 않은 말 고만하고, 다들 올라오이소.




다들 모션 스톱 




큰며느리       (노래)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랫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여보… 오늘이 오기만 기다렸어요. 

당신 오는 날이잖아요. 


당신 온다고 새 옷도 입고 새 신도 신고 머리도 빗고 오랜만에 화장도 했네요.

엄마는 자꾸 시집을 가라 카는데…  


이제는 나는 엄마를 떠날 수가 없어요.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씩씩한 울 엄마라 생각했는데… 


내가 정신줄을 놓고 엄마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낳은 자식 보는 맹키로 내를 바라보며 자꾸 울컥하는 엄마 마음이 느껴지가 떠날 수가 없네요.


엄마는 내를 지키주고 내도 엄마를 지킬 끼라요. 평생……



(노래)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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