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경숙 Nov 08. 2023

꽃피는 봄이오면 (9)

2023 아르코 선정작 희곡부문 

- 9장 -




시어머니 발을 동동 구르고 안절부절못한다.


잠시 후 고모가 들어온다. 





시어머니       고모 우예 됐어요?


고모           아무리 찾아봐도 코빼기도 안 보이요. 


시어머니       아이고, 야들을 우짜노… 내 다시 나가 보꾸마. 




순이네와 치킨집 사장 들어온다. 




시어머니        찾았는교?


순이네          형님… 빵집 주위를 이 잡듯이 뒤짔는데 그림자도 안 보이요.


치킨집 사장      장은 벌써 문 닫아가 사람 씨도 안 보이고 


시어머니        가들이 어데갔을꼬? 내가, 내가 다시 나가 보꾸마 


고모            이 야밤에 자꾸 어데를 나간다고 그래싸?


시어머니        이 오밤중에 야들은 어만데를 다 헤매고 있을긴데  


치킨집 사장     이 여사는 가마이 있으이소.

지가 다시 이짝저짝 안 가본데 없나 댕기오고 경찰서에 들러가 신고하고 올 텡께. 




치킨집 사장 나가려고 하는데 

큰며느리 손 잡고 작은며느리 들어온다. 


큰며느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다들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둘을 빤히 쳐다본다. 





작은며느리       다들 나와 계시네요. 뭔 일 있어요? 표정이…

아~ 제가 좀 늦었지요. 그게…


시어머니         괘안나?


고모             야! (소리를 버럭지른다)


작은며느리       죄송해요. 너무 늦었지요.


시어머니          니 빵 사러 간다 했나? 민들레빵집에?


작은며느리       아~ 팥빵을 어머님도 좋아하시고 좀 사올라 했는데… 

오늘 일이 다 꼬여 가꼬예. 


장에서 이장님을 만났는데 사모님이 

추어탕을 끓이났다꼬 가는 길에 집에 

좀 들르라 해서 갔다가 그냥 나오기도 

뭐하고 좀 앉았는데, 

형님이 잠드는 바람에요.


 깨워도 어데 일어나야지요. 

잠이 덜 깼는지 아처럼 우는데…

아이스크 림으로 달래가 오느라고 늦었으예.



고모             뭐라꼬? 하이고 어이가 없어가.


시어머니         안 다칬으마 됐다.


순이네           카마 오늘 빵집에 불났는거 모르겠네.


작은며느리       불이라고요? 


큰며느리         불, 불, 불이 났다, 불……


작은며느리       혹시 민들레빵집요?  


큰며느리        민들레빵집… 민들레..


(갑자기 정신이 돌아옴) 

민들레빵집에 불이 났다꼬? 


(먹던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리고) 


어머니 참말이라요? 불이났는 기 참말이냐꼬요? 



시어머니          큰아야, 내… 내를 알아보겠나?


큰며느리          불이났는 기 참말이냐꼬요!! 


고모              그래 참말이다 민들레빵집이 홀라당 다 탔삐따.


큰며느리          (주저앉는다) 

하이고.. 여보, 준이 씨.. 민들레빵집이... 

불에 타삤단다. 

당신하고 추억이, 울엄마 추억이 다 타뿌따 카네요. 

달콤한 팥빵도, 행복한 마음, 감사한 마음도 다 타뿌따 카네요...


(울먹임)



시어머니          니도 준이하고 거서 추억이 많나 보네. 큰아야 이제 다 이자뿌라. 

다 이자뿌고 우리 새 출발하자.


        

큰며느리         어머니, 거가 어떤 덴줄 알아요? 

그 사람이 어린 시절 얘기를 거서 다 

들려줬다 아입니꺼.

아부지가 월급 타가 빵 사오던 날. 

형제들이 먹는 걸 바라보믄서 행복해하던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랬십니더. 


팥빵밖에 안 묵는다고 거짓부렁 치시는데… 

그 사람은 크는 내내 팥빵을 사다드림서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뒀던 곳이라요. 

제가 우째 이자뿌겠으요.



작은며느리      우리 빈이 씨도 자주 그때 얘기를 했어요…

 어머니가 팥빵밖에 안 묵는다고…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우리 엄마도 

당신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배 곪는 자식

새끼들 입에 뭐 하나라도 더 넣어줄라꼬. 

늘 그러셨던 얘기들요.



시어머니        그 집 팥빵은 내 새끼들 추억이고 그것들 마음이다. 

가들이 아빠 보내고 마음 둘 때 없어 하는 

지애미를 생각한다꼬 

그래 팥빵을 사나르더라.  

(큰며느리 손을 잡으며) 

… 

큰아야, 니가 월매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감정이 복받힌다)

내캉 둘이 있느라고 마이도 힘이 들었제? 

표현도 잘 모하는 시어매가 원망스러웠던적도 참말로 많았을 끼라. 


니 잠시라도 정시이 돌아오모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잊지 말거래이. 

내가 니를

… 

너무 사랑한다……



순이네          하이고.. 언니.. 


큰며느리        (말없이 시어머니를 빤히 쳐다보다) 

엄마

… 

내 보고프다

… 

잠도 오고 

배도 고프다.



시어머니       (눈물을 훔치면서 웃음) 

그래, 그래, 우리 큰딸왔나?

어여 들어가가 밥묵자.

작은아야 니도 배고프제? 

얼른 밥차리 주꾸마 들어가자



작은며느리     이장님네서 주신 추어탕 있어요. 

제가 후딱 밥 앉히게요. 

고모님 시장하시지요   


 

고모           야이야, 밥이고 모고 내 정시이 하나도 없다. 

이기다 몬 일이고


치킨집 사장    됐네, 됐어. 다들 힘들긴데 얼른 들어가요. 

우리 이 여사, 뜨끈뜨근한 밥에 추어탕 

한 그릇 말아가 드시고 힘내이소! 



시어머니      고맙십니데이. 순이네하고 사장님하고 다들 애썼십니더. 


순이네        지들이 뭐 한기 있다꼬… 얼른 들어가요. 사장님 우리는 가입시더.


치킨집 사장    예. 그라모 지들은 사라질 텡끼 다들 늦은 저녁 드시고 오붓한 시간 가지이소.   




순이네와 치킨집 사장 인사를 하고 퇴장한다. 




고모           뭐 하노 작은아야? 빨리 밥 앉히라. 아휴~ 오밤중에 추어탕 묵게 생깄다. 



작으며느리     예~ 금방 앉히께예.

(주방으로 급하게 사라진다.)


큰며느리       추어탕 묵게 생기따. 엄마, 추어탕 묵게 생기따. 추어탕……


시어머니       그래 추어탕 묵게 생기따 


고모           하이고, 참…



큰며느리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그런 큰며느리를 서로 다른 감정으로 아련히 쳐다보는 고모와 시어머니 





암전

이전 08화 꽃피는 봄이오면 (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