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시집간 이후로 불안 증세를 보이셨다.하루라도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주무신다.
그도 그럴것이 좋은 집안에 시집 잘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매일 전화해서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 매번 놀라셨기 때문이다." 어쩜 그러시냐..나아질거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살림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나는 종가집 며느리처럼 나를 가르치셨다. 사실 시어머니는 위엄과 자존심밖에 없으신 분이었다.매일 나는 고된 시집살이를 엄마와의 전화로 이겨내곤 했었다.
그랬던 딸이 ..
모진 시집살이 다 견뎌내고 주재원 생활하다가
다시 중국가서 사업한다기에 엄마는 안심하셨다.정년없는 내사업이 낫지..라며..
그러더니 혼자 트렁크 하나 끌고 옆에 와서 누울때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엄마는 말을 잃었다.
처음 시집 보낼때는 "청량고추 매운거 갈아 마신것 처럼 속이 아리다.."라고 하시더니
어느날은 "그래..그냥 버텨라..너가 살려야지"라며 나를 위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엄마가 나에게 "앨범속에 넣어 둔 돈 어딨니?"라며 숨겨둔 돈이 없어졌다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보지도 못했고 내가 앨범을 왜 뒤져?"라고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찜찜했다. 내사정이 급해서 엄마에게 돈 300만원을 빌렸는데 느닷없이 " 내 돈 언제 갚을거냐!!"라며 몇날 며칠 동안 나를 볶아댔다.
....
엄마가 이상해졌다.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던 분이 왜 그러실까?
내 설움에 울고 엄마의 이상행동에 울고 어쩔수 없는 현실에 울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 후 엄마는 점점 말을 잃었고 식사도 잘 못드셨다.동생들이랑 의논해서 치매검사랑 뇌인지기능을 검사해 보기로 했다.
이게 웬일인가!!
인지기능 저하에 치매 진단이 내려졌다.
초기 단계에서 의심과 불안 증세가 보였던 것이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혹시 대비하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놓은것이 잘했다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직장으로 요양원을 선택했다.
요양원의 시스템도 알아 볼겸 바로 취업을 했다. 요양원의 식당은 12시간 근무에 2시간 휴식.
2일 근무하고 1일 휴무하는 시스템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이에는 1.5배의 근무비를 받을 수 있었다. 총 급여는 대략 215만원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