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연의 시작
요즘 한국 출산율,, 성양극화, 국제결혼 뉴스가 떠들썩한데 국제결혼에 대해서 이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면 그때 우리 집은 참 잘 살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3학년 때 친구들이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가 사둔 간식거리 초코파이나 몽쉘 같은 것들,, 봉지과자보다는 곽에 들은 비싼 과자들이 항상 주방에 즐비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항상 날 좋아했었다. 그리고 내 키보다 높은 주방 테이블 위에는 항상 다 먹은 유자차 유리병에 꽉 차있는 500원짜리 동전들과 천 원짜리 지폐..
그걸 한 움큼 들고 가서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놀고 퐁퐁도 타고 재밌게 놀곤 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해 질 녘 즈음까지 축구하고 있으면 엄마가 교문 철장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면 난 집으로 가서
갈색봉지에 담긴 옛날통닭을 들고 퇴근하시는 아버지를 반기며 누나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멋진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그런 꿈같던 생활이 끝나가는 걸 알려주듯이
언제부터인지 항상 동전으로 꽉 차 있던 빈 유자차 유리병에 든 동전들이 점차 줄어가는 게 보였고
늦은 저녁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지고.. 다정하던 아버지는 말씀이 점점 줄어들고 어머니는 저녁에 항상 나가셔서 새벽에 들어오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 투정을 받아주실 만큼 가족들의 인내는 크지 않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삐뚤어져갔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다.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 건설회사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 옷장에 보았던 뭔지 모를 수많은 종이들이 어음이라는 걸 알고나서부터 아버지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난 14살이 되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누나는 고등학생이라 저녁을 학교에서 먹고 12시쯤 되어서야 귀가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TV만 켜놓고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6시... 7시... 8시... 9시..
소주 냄새 가득한 파카, 흙먼지 가득한 두툼한 바지, 땀 냄새나는 발목보호대..
그땐 아버지가 미워서 살갑게 하지 못했다. 다녀오셨어요 한 마디에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셔서 바로 주무시고..
난 혼자 라면을 또 끓인다.
그렇게 3년... 아니 10대를 보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난 가족이 뭔지 잊어버렸다.
그냥 빨리 사회로 나가서 돈을 벌고 싶었고 이 가족은 실패했고 내 가족을 다시 예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땐 정말 가족들이 미웠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가 끝나기도 전 나는 도망치듯이 군대를 갔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행복해야 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입영버스를 타고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의 나와 또래로 보이는 모든 이들이 가족들과 슬픈 얼굴을 하고 이별 준비를 하는 틈 사이에서
혼자 강한척하려 애썼던 것 같다.
부산에서 자란 나는 논산은 정말 추웠다.
20년 동안 눈이라는 걸 아마 내 기억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따뜻한 곳에서 자란 나였기에
정말 힘들 줄 알았는데,
하루 가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군대는 천국이었다.
세끼 영양가 있는 쌀밥을 먹을 수 있고 새벽의 공허함을 느낄 새도 없이 피곤해서 자고
아침 일찍 눈을 뜨면 동기들과 함께 소리치면서 구보하고.. 특히 딸기밭을 지날 때마다 코로 들어오는 그 향은 정말 날 미치게 했다.
살이 20KG 이상 찐 것 같다. 근육도 많이 붙고 정말 즐겁게 군 복무도 하고 병장 만기제대하고 나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여자친구 데리고 친척, 가족들한테 결혼할 여자라고 소개해 줄 정도로 180도 바뀌었다.
학교생활도 잘했고 학점도 좋았다.
목표를 만들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얼른 결혼하자.
내 새끼한테 내가 느꼈던 나의 어린 날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목표가 생기니 공부가 재밌어졌다.
3, 4학년동안 전공과목 모두 A+를 맞으니 교수님들이 서로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교수님이 베트남 아는 친구가 사업을 하고 있으니 있으니 가서 한번 세상을 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안 하고 갔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처음 보이는 광경은 게이트마다 놓여있는 수많은 대형 전광판의 SAMSUNG 갤럭시 휴대폰
그리고 엄청난 습기가 여행객들의 땀냄새, 풀 냄새가 가득했다. 마치 군대에서 제초하면 나는 그 풀냄새들...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해외에서 살게 된다니... 정말 꿈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