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체류기
이스탄불에 갔었다. 그리스부터 로마를 지나 오스만투르크까지의 온갖 유적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자동차와 사람과 개와 고양이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탁심광장에서 출발해 어느 뒷골목을 걷는다. 생선가게를 만난다. 이 나라에선 어떤 물고기를 먹나 궁금해 걸음을 멈춘다. 한국과 비슷한 것도 있고 색다른 것도 있다. 어쨌든 반짝반짝 총천연색 어류들이 싱싱하고 질서 있게 쌓여 있는 모습이 볼거리로서 괜찮다. 다만,
10여 마리의 파리가 분주히 날아다니는 게 거슬린다. 파리에 대한 고정관념 덕분에 생선이 상한 것처럼 보인다. 쟤들 좀 어떻게 안되나?
다시 길을 걷는다. 생선가게의 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벌꿀 전문점을 만난다. 이 나라는 벌꿀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에선 본 적 없는 벌꿀 전문점이 있다. 밖에서 대충 훑어봐도 온갖 종류의 꿀들이 온갖 종류의 용기에 담겨 진열되어 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본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날 맞이하는 건 10여 마리의 벌이다. 흠칫 놀랐다. 벌들이 실내를 날아다니는 건 처음 본다. 꿀집에 벌이 돌아다니니까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 신뢰가 생겨버린다. 혹시 가게주인이 일부러 섭외해서 풀어놨다 의심될 정도로.
자연현상으로 보면 당연한 일들이다. 생선가게에 파리, 꿀 가게에 벌. 그러나 하나는 VIP가 됐고 다른 하나는 진상 손님이 됐다. 언뜻 파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내가 오만했음을 깨닫는다. 내 미안함이 어떤 마술같은 경로로 파리에게 정확히 전달된다 한들, 파리는 같잖다는 듯 픽 한번 웃어주고 자기 할 일을 계속 할 것이다. 인간은 두뇌활동은 너무 잉여스럽다.
난 생선도 꿀도 공평하게 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