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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r 24. 2023

소개팅의 힘

소설


                                                           1     


 실연을 당했다. 한동안 살기 싫었고 그러다 죽고 싶어졌다. 그래서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위세척을 했다. 철 지난 효과 없는 방법이라고 욕 많이 먹었다. 

 생활은 흩어질대로 흩어졌다. 당연한 것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주변에서 많이 걱정했지만 난 쉬지않고 자발적으로 망가졌다.  보다 못한 한 친구가 소개팅을 제안했다.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나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고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술이 덜 깬 나를 억지로 끌고 나갔다. 강제로 끌려나가며 현관 앞의 거울을 힐끗 봤다.  

    

 약속장소엔 한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난 속으로 상황에 대한 정리를 끝냈다.      

 ‘저 여자 못생겼다. 오늘 소개팅 실패다!’    

 

 날 위로해준답시고 이 자리를 기획한 친구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놈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바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뭔가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나는 모든 말을 성의없이 툭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에 진지하고 예의바른 반응을 했고 그러면서 한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괜찮은 여자는 아니었다. 감히 말하지만 그녀는 내게 마음이 있는 듯했고, 그런 그녀가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난 시종일관 냉정하고 싸늘한 태도를 지켰다. 외모로 사람이 평가되는 세상에 마음이 아팠지만, 얼마 전에 내가 겪은 아픔에 비하면 농담 수준이었다. 

 얼마 전에 내가 겪은? 가만 있자.. 내가 지금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네? 그러고 보니 내 실연의 상처가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버티다가 몸이 안 좋다는 뻔한 핑계를 대고 일어났다. 몸이 안 좋은데 왜 나왔냐는 질문은 다행히 없었다.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번호를 차단했다. 그녀가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를 빌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현관 앞의 거울을 다시 봤다. 이제 남 걱정도 할 여유가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2     


 잔뜩 심심하던 차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심심하지 않냐고 묻길래 미치도록 심심하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소개팅을 제안했다. 얼마 전에 실연당하고 자살을 기도한 놈이 있는데 부담갖지 말고 만나서 좋은 얘기 좀 해줘서 보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담을 갖지 말라니? 하지만 한편으론 호기심도 생겼다. 얼마나 못난 놈인지 한번 보고 싶어서 승낙했다. 내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의없는 화장을 한 후 거울을 보고 놀라 망설였지만, 실연당하고 죽네 어쩌네 하는 남자의 새출발 들러리는 싫었기에 그냥 집을 나섰다.    

  

 남자를 보는 순간 설명 없이 상당 부분이 이해가 갔다. 꼭 못생겼다기보단 지루하게 생겼다는 편이 낫겠다. 남자는 여자를 예쁘다/못생겼다로 구분하지만 여자가 보는 남자의 외모는 좀더 형용사가 많다. 그와 마주 앉자마자 한 서너 시간은 같이 있었던 것처럼 지루해졌다. 내 감정은 남자에 대한 연민에서, 그를 버린 여자에 대한 연민으로 순식간에 옮아갔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가끔씩 본성에 반하여 의무감으로 한때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서 힘이 들었다. 남자의 언어는 외모 만큼이나 지루했다. 거기에 일일이 성의있게 반응하면서 흡사 공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관객이 한 사람도 없는 공연.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남자는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몸이 아파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더럭 겁이 났다. 2차 자살 시도? 혹시 성공이라도 한다면 아마 난 최후 목격자로서 조사를 받게 되겠지? 온 정성을 다해 그를 말리려다가 문득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할 만큼 했고 헤어진 여자친구도 아닌 내가 매스컴을 탈 리 없는 이상 결백한 참고인으로 조사 받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어차피 남아 터지는 게 시간이니까.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그가 등을 보이자마자 차단했다. 친구의 의도와 달리 오늘 난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렇게 한심한 놈의 죽음을 동정하기엔 세상에 가슴 아픈 죽음이 너무나 많다. 앞으로 주변의 아픔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빨리 집에 가서 이 돼먹지 않은 화장이나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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