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산책
고전과 최신 유행이 공존하는 곳, 서촌과 북촌.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답게 번잡스럽다.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불쑥 나타나는 비밀스러운 골목이 고즈넉함을 준다. 물욕과 식욕이 진작함과 동시에 낭만 지수가 치솟는 매력적인 공간이 바로 서촌, 북촌이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해사하다.
20대의 젊은 친구들부터 5, 60대의 중년까지 모두 소녀처럼 들떠있다. 오래된 도시에서 잠시나마 행복에 빠진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찍는 이도, 찍히는 이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멀리서 지켜보는 나 또한 미소 짓는다.
이보다 더한 마음 치료가 없다. 한시도 한 눈 팔 여지가 없어 근심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경복궁역부터 효자로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은 가을에 특히 걷기 좋다. 저 큰 나무들이 언제부터 저곳에 서 있었는지, 볼 때마다 경탄해 마지않는다. 경복궁의 역사처럼 심어지고, 불타 사라지고, 다시 그 자리에 자라나고 했을 것이다. 무구한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고 스치는 일은 나에게 늘 경이롭다. 그런 까닭에 고고학자에게 호기심이 가고, 어릴 때부터 고궁이나 박물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나 보다.
친구와 경복궁역, 혹은 안국역에서 만나 곧장 커피를 마시러 간다. 요즘은 서촌의 카페 'Camel'을 주로 간다. 커피맛도 보장되지만 은행나무로 뒤덮인 가로수와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잔의 호사로움을 맛보기 위함이다.
감수성이 분발하는 순간이다.
날이 좋으면 커피 한잔 사서 영추문을 마주한 야외석에 앉아도 좋고 바로 옆, 마치 카페의 마당처럼 붙어있는 '통의동 마을 마당공원'에 앉아 한참 쉬었다 가도 좋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는 늘 만석이라 공원에 앉는 날이 더 많지만.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왕 앞에 정승과 아낙네가 앞장 서고, 다양한 피부색의 왕들이 곤룡포를 입고 여기저기서 출몰한다. 금빛과 붉은빛의 나무들과 더불어 여행객의 화려한 복장과 화장이 길을 밝힌다.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고 플라타너스 색이 바래는 계절, 길은 스튜디오가 된다.
사람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 동네는 맛집도 많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가는 곳만 가게 된다.
아는 맛이지만 매번 감탄하는 코다리 집과 십여 개의 미쉐린 스티커가 맛을 보장하는 칼국수집이 그렇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목적지의 우선순위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 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맛을 내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어가는 일인지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세 식구 먹는 찬임에도 할 때마다 맛이 다르거늘 백인분이 족히 넘는 음식을 같은 맛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 엄청난 내공이 필요할 것이다. 내공의 힘은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만큼 쌓인다. 정성이 한결같기는 참 힘든데 말이다. 내공의 역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이제부터 길을 찾아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다.
경복궁 '흥례문'을 지날 때는 의식처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포즈와 각도, 촌스러운 게 맘에 쏙 든다. 젊은이들은 한자리에서 십여 장의 사진을 남긴다. 그들은 절정에 오른 젊음의 아름다움을 남기지만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재빨리 남긴다.
사진에 예쁘게 남기 위한 표정이 낯설다. 아예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지난주 걸었던 길을 또 걸어도 좋고,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들어서도 좋다. 길은 어디로든 연결되어 있고 목적지 없는 산책이라 헤맬 일이 없다. 걷다 보면 또 다른 길을 만나고 그 길은 다시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여행은 새로운 길을 맛보는 데서 도파민이 솟는다. 가벼운 나들이도 여행이라고 부른다.
낡고 오래된, 그렇지만 아름 다운 장면들이 길마다에 있다.
젊은이들은 나름의 감성으로 이곳을 즐기고, 나처럼 70년대의 한옥과 80년대의 양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향수에 젖어 이곳을 향유한다.
친구와 나란히 걷고
서로의 사진을 찍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산책.
아름다운 경험이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한다. 삶이 지치고 하루하루가 같은 날의 연속처럼 무료할 때 새로운 곳으로의 산책은 극약처방이다.
서울 한복판의 옛것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연을 품는다.
기와 사이를 비집고 자라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우아한 산국, 비좁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홀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잡풀들, 담을 타 넘어 당장이라도 씨알 굵은 열매하나 내어줄 것만 같은 감나무.
서촌, 북촌의 미덕은 자연과 공생하고 있음이다. 인위적 보살핌이 아닌 순리대로 생을 펼치는 자연이 길 위에 있다.
삼청동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맛이 있다. 북촌을 향해 나있는 골목골목 모두 재미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산책은 발견의 연속이고 그 안에서 영감을 얻는다.
거창할 필요가 없다.
계절마다 툭툭 튀어나와 길을 밝히는 풀 한 포기의 그림자에서도 삶을 가꾸는 영감의 원천이 숨어있다.
발견하는 자의 몫이자 행운이다.
계동길에는 멋스러운 샵과 작은 갤러리들이 있다. 정보 없이 가더라도 근사한 전시를 볼 수 있다. 내 집은 아니지만 커피 한 잔 값이나 발품 만으로 멋진 공간을 몇 시간 차지한다. 고작 몇 시간이지만 순간의 좋았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영혼의 힘을 기르는 수액이 된다.
마음 근육은 좌절 앞에서 힘을 발휘해 나를 잃지 않게 도와줄 것임을 믿는다.
결국, 산책은 나를 지키는 시간이다.
계동길 '화양연화' 바로 옆에는 중국 요리점 '중경삼림'이 있다. 서촌에서 7년 전 발견한 세탁소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도있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1985년작 영화 제목이다. 지금은 연기의 신이 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초기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광 주인장이 운영하는 세탁소일까?
동네에 걸맞은 품위 있는 작명이다.
20년 전, 종로 3가를 지나며 본 금은방 이름이 '골드문트'여서 한참을 웃었다. 헤르만 헤세의 팬이거나 골드라는 단어만 보고 자신의 가게 이름을 만든 단순 명료한 분이 지었을 이름. 아마도 후자가 아니었을까.
서촌에서 삼청동으로, 다시 북촌을 누비다 보면 훌쩍 이만보가 된다. 여름에 다친 무릎이 여전히 아픈 중에도 테이핑을 하고 걷는다. 지금은 허리 디스크 때문에 부자연 스런 일상을 보낸다. 나에게 일상은 걷고, 보고, 사유하는 것인데 말이다. 1년 사이, 손목과 갈비뼈가 부러지고 무릎인대가 다치고 디스크가 왔다. 등산도, 긴 산책도 중단이 되었다.
생전 안 하던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주여, 제발 자연 속에 살게 하시고 다시 땅 위에서 자유롭게 걷게 하소서...
그리고, 남편 사업 대박 나게 하시고 우리 딸 대학 가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게 힘을 주소서'라는 속물적인 기도를 곁들인다. 마지막에는 다분히 주님의 시선을 의식한 기도를 올린다.
'주여, 세상의 모든 가난한 자에게 기회를 주시고 공평한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배고픈 자가 없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윤보선 가옥, 개방은 안 하지만 높은 담 너머로 고목들이 사시사철 행인들을 붙잡아 세운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블루 보틀' 로고. 블루 보틀 카페 뒤편에 있다.
이리도 감각적인 도시가 또 있을까? 오래되었다고 촌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통은 이제 모던함의 한가운데서 재탄생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으로 삿갓 쓴 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놀랍고 고맙다.
길은 자신만의 소명으로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걷다 보면, 마음속에 세포 마디마디에 스위치가 켜지 듯 생명의 기운을 얻는다.
골목마다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매력을 발견하러 그곳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