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늘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바람이 스산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나
세월 속에 함께 했던 이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이때,
시인의 온기를 느끼면
어두운 마음에 따스한 촛불이 켜지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마침
<낱말 공장 나라> 그림책을 집어 들었을 때
바로 이 시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출처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 실천문학사 1988
책 속으로
제목만 보면
대체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진다.
있는 그대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낱말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나라인가? 정도
그런데 책을 펼치면 첫 문장이 의외다.
사람들이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나라가 있었어요.
그곳은 바로
거대한 낱말 공장 나라였어요.
<낱말 공장 나라> 본문
공장에서 낱말을 생산하는데
말이 넘쳐나야 하지 않나~ 하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기서도 자본주의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 나라에서는 말을 하려면
낱말을 돈을 주고 사서 삼켜야만 한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낱말마다 가격도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다 버린
말들을 찾으려고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봄이 되면 낱말을 싸게 파는 바겐 세일도 한다.
간혹 운 좋게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낱말을 잡는 이들도 있다.
주인공 필레아스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가난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 필레아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낱말 세 개를 잡는다.
필레아스는 가족들 앞에서도 말하지 않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쓰려고 아낀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 시벨의 생일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도
“안녕, 잘 있었니?”라는 말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그때 오스카라는 부잣집 아들 녀석이 등장한다.
필레아스의 가장 큰 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스카가 선수를 친다.
소중한 시벨,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우리가 어른이 되면
분명
결혼하게 될 거야.
<낱말 공장 나라> 본문
자신감 넘치는 오스카
상대적으로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느끼는 필레아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이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사랑이다.
필레아스는 용기를 내어
아껴두었던 세 개의 낱말을 시벨을 향해 말한다.
이 낱말들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시벨을 향해 날아간다.
시벨은 필레아스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해피 엔딩을 암시하며 마무리가 된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 아니었다면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그림책이 좋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다소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생각의 갈래를 다양하게 펼쳐주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이야기다.
언론을 장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진 자들
혹은 언론을 억압하는 정부
<낱말 공장 나라>에 비추어 충분히 다루어볼 만하다.
책 밖으로
<낱말 공장 나라> 독후활동
★ 낱말 공장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 낱말 공장 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낱말을 구하나?
★ 낱말 공장 나라에서 가장 비싼 낱말은 어떤 낱말일까?(상상하기)
★ 낱말 공장 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낱말은 어떤 낱말일까?(상상하기)
★ 낱말 공장 나라에서 가장 안 팔리는 낱말은 어떤 낱말일까?(상상하기)
★ 낱말 공장 나라 사람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제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