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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Feb 16. 2024

쓴 맛의 가치

6번째로 높은 산을 다녀오다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등산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당연히 알고 있는 한라산과 설악산, 관악산과는 다르다. 비교적 인지도가 낮다. 본인 역시 친구가 가자고 해서 알게 된 그런 산. 그래서였는지 처음 듣는 산을 위해 굳이 3시간 반의 운전을 감행해야 할까? 무심코 생각했다.


불만투성이로 시작되었던 등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초장부터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일출 산행을 목표로 해 뜨는 시간을 딱 맞춰 출발하였는데 이게 웬걸. 주차장까지 차로 5분이나 남은 상황에서 앞선 차 2대가 고장이 난 것이다. 문제는 갓길이었다는 점. 차 5-6대가 줄줄이 후진하는 웃긴 상황에 처했다.



증거 자료로 첨부. 가뜩이나 눈이 쌓여있던 커브길, 후진에 약 5분을 소요



후진하는 길은 눈 쌓인 커브길이지. 동은 트고 있지. 마음이 절로 다급해졌다. 우스갯소리로 일행과는 망한 산행이라고 떠들었다. 그나마 사고 없이 갓길을 빠져나왔다. 출발 시각은 20분 지연,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시간은 30분이 추가되었다. 예상 시각과 약 1시간이 벌어졌고, 왕복 산행으로는 2시간이 추가된 셈이다. 별 수 있나? 3시간 반을 운전해 왔는데 올라가야지.


등산 전 찾아봤던 후기에 의하면 동네 산 수준이라는 평히 다분히 있다. 실제 산행 시간도 적은 편이다. 다만 직접 느끼기에 그분들은 고수였다. 산타는 다람쥐쯤 되셨던 것이고 적어도 눈길 산행은 아니셨던 것 같다. 등산 초보인 내게는 상당히 까다롭게 느껴졌다. 내려와서 보니 절대 동네산 수준은 아니라는 후기도 꽤 많다 (이제 암)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만큼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기에 경사가 상당했다. 흡사 클라이밍을 하는 듯했다 (눈물 생략; 진짜 아찔했음)


열심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동이 텄다. 잔인하게도 날씨는 맑았다. 해는 저절로 마음이 동요될 만큼 진했다. 문제없이 올랐다면 분명 그 일출은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하게 된 일출은 겹겹이 둘러싸인 나무에서 빼꼼히 내밀었다. 그마저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기웃대어야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빽빽한 가지 속 자그맣게 보이는 계란 노른자



떠오르는 일출을 뒤로하고 정상이 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앞선 이들은 일출을 보고 내려가는지 점점 하산 인원이 많아졌다. 저 사람들은 다 제대로 봤겠지? 하는 마음에 입에서는 괜스레 쓴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가뜩이나 이미 초장부터 높았던 경사는 더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앞선 친구가 올라가기 위해 한 발을 내딛으면 높은 경사로 인해 자연스레 눈뭉치가 내 쪽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발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가고 있었다. 해를 빽빽하게 가리고 있던 가지들도 이제는 없다. 해는 선명히 보였다. 힘들게 올랐던 길을 넘어선 순간, 눈앞에는 비로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물론 해가 중천에 떠있었기도 한데.



갑자기 신선이 튀어나올 것 같은 함백산 정상



가끔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유를 묻곤 했다. 정복감이나 아름다운 풍경 등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이해는 갔지만 대입은 힘들었다. 그간 산행 경험은 단지

3-4번. 적어사 였을까? 굳이 주말에 산을 오르는, 나만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산행 당시에는 즐겁지만 알맹이가 없는 듯한 그런 허무함은 있었다. 예상치 못했지만 웃기게도 처음에 무시했던 그 함백산을 오르고 나서에야 비로소 채울 수 있었다.


영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상에 올라 풍경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2가지 생각들로 꽉 채워졌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보다도 내게는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등산 내내 느껴졌던 쓴 맛은 정상을 더 달게 볼 수 있게 했다는 것. 일출이 못 보았다는 불만 따위는 잊혀진지 오래다.


물론 정상은 추웠다. 뺨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바람 때문에 오랜 시간 있을 수는 없었다. 멋진 풍경은 뒤로 하고 챙겨 온 계란을 삼키자마자 내려왔다. 아마 정상에서 머문 시간은 15분 내외였을 것이다. 내려오는 하산 길은 역시 가팔랐다. 결국 길은 같으니까. 미끄러질까 두려움에 아까 잠시 없어졌던 쓴 맛도 다시 났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은 좋다. 이제 이 쓴 맛은 가치가 있다.


지금 느끼는 쓴 맛 뒤에 또 얼마나 달달한게 찾아올까?이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지속된다는 것, 게으른 나를 산을 오르게 히는 명확한 이유이다.




함백산 산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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