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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Mar 14. 2024

28년 간의 짝사랑

나의 애착인형 이야기


내겐 무려 28년을 함께 한 친구가 있다.

아, 사실 짝사랑일 수 있다.


반려동물이나 사람은 아니기에 그간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으니까. 그 친구의 이름은 ‘단추’, 곰돌이 인형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했는지 보자마자 모두 알아차릴 수 있다. 대체 어디서 샀을까 싶은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단박에 느껴진다.


이 자그마한 곰인형이 내게 주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지인에게 받을 수 없었던 위로를 이 애착 인형에게 받곤 한다.


단추에게 일방적으로 받은 것이 많지만 나 역시 이 친구를 보살피는 데에 물심양면을 다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면세품을 포기하고 가방 한 켠, 단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니까. 좋은 풍경을 보게 되거나 재밌는 체험을 하게 되면 꼭 함께 사진을 남긴다. 그런 과정 속 쌓인 추억이 어느새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우리 사이에 항상 즐거운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인형마저도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맨날 만지다 보니 닳고 닳아 결국 실밥이 터졌다.


유퀴즈 출연으로 지금은 유명해진 토이테일즈(인형 병원), 단추는 이미 2010년대에 몇 번 방문한 기록이 있었다. 한 번은 짧은 수술이어서 당일 퇴원이 가능했지만, 입원할 정도로 큰 수술이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단추 걱정하며 며칠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을 출산도 전에 경험해 본(?) 아이러니.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나 지금도 내 곁에서 자리하고 있다.


꽂힌 게 있어도 오래 가져가지는 못했던 나다. 집요할 정도로 파고들어도 대개 1년은 못 갔다. 그림도 그랬고 좋아하는 음식도 그랬다. 단기간 고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던 그놈의 팬질조차도. 그랬던 내게 제일 긴 호흡을 주는 친구, 그게 낡은 곰돌이라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에 있다. 단지 곰돌이의 탈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상당히 귀여운 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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