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아빠에서 회사로 돌아가다
“올해 2월에 회사를 그만두셨다고 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한 국제기구 최종 면접에서 HR 매니저가 이렇게 물어봤다.
예상했던 질문이 나와서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준비해 둔 대답을 꺼냈다. “네, 저와 제 아내가 부모가 되면서 저는 아이가 태어난 후 전업 아빠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첫 6개월은 아이만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이제 다시 일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감 있게 대답을 하였고, 분위기를 풀려고 농담도 덧붙였다. “요즘 제 직책은 주방장, 기저귀 물류 담당, 그리고 청소기 관리자입니다.” 몇몇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한 분은 좋은 결정이라고까지 말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속으로 “됐다, 이제 복귀 플랜 완벽히 성공!” 하고 자축하고 있었다. 그 후로 3주 동안 매일 메일함을 열어봤다. ‘축하합니다,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으신가요?’라는 제목의 메일이 올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데… 아무 소식도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지메일로 로그인한 후 계속 페이지를 리프레시를 하였지만, 나의 도전은 그냥 또 하나의 실망으로 끝났다.
솔직히 말하면, 육아 때문에 퇴사를 결정할 때부터 걱정은 있었다. 비싼 대학원 등록금 때문에 빚도 있고, 제네바에서 커리어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자신의 파트너를 따라 제네바에 왔다가 경력이 멈추었다는 얘기는 너무나도 흔해빠진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산후 회복을 돕고 갓 태어난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계획이 분명했다. “딱 6개월만 전업 아빠, 그 뒤엔 아기가 어린이집 가면 바로 복귀!”
그래서 출산 전에는 아내를 위해 매일 뼈 고은 국 끓이고, 아기 용품을 중요도와 비용을 고려하여 엑셀로 정리하고, 신생아 육아 관련 글 읽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는 미래 걱정이 싹 사라졌다. 아기는 하루 종일 자고, 가끔 울고, 나는 하루 종일 웃었다. 밤엔 새벽 4~5시까지 애기를 보면서 아기가 괜찮은지 확인하느라 좀비 모드로 살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아내의 원만한 회복과 아이의 건강, 이 두 가지 중요한 사안들만 내 머릿속을 차지하였다.
3개월쯤 지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기가 밤에 더 잘 자고, 표정도 풍부해지고, 목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면 아내도 쉴 수 있고, 나도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아기의 쪽쪽이를 까먹을 때에는 울부짖는 아기를 달래며 패닉모드도 경험하였지만, 천천히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아기를 겨우 재운 뒤엔 슬쩍 핸드폰을 꺼내 이력서를 고치고, 링크드인이나 다른 구직 웹사이트들을 새로고침했다.
문제는.... 시간과 체력이 항상 부족했다는 것. 아기를 30분 겨우 재우고 노트북 앞에 앉아도, 사실 집중은 안 됐다. “이력서 문장 어떻게 쓰지?” 하다가도 귀가 자동으로 아기 소리에만 반응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매일같이 육아에 전념해왔던 나의 머릿속은 이미 육아에 최대로 적합한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 완료된 상태였다. 아기 밥 준비, 기저귀 교체 속도, 아기 근력운동 트레이너는 자신 있는데… 커버레터에 내 성과를 숫자로 적는 건 도저히 손이 안 갔다.
그러다 아기가 6개월쯤 되면서 밤에 11~12시간을 푹 자기 시작했을 때에는. 드디어! 다시 ‘일하는 나’를 소환할 시간이 생겼고, 슬슬 뇌 속 깊이 잠자고 있던 비즈니스 단어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전략기획”, "데이터 기반 사업 계획, " 등등...
사람들을 만나 커피챗도 하고, 온라인으로 네트워킹도 하면서 예전의 나를 한 조각씩 찾아갔고, 결국 제네바의 한 국제기구에서 새로운 자리도 찾았다.
물론 마음은 복잡했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설렘과 동시에, 부모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병행할까 하는 걱정이 항상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오래 걸린 과정은 아니었지만, 매일 밤 채용 공고를 새 로고침하며 메일함만 쳐다보던 순간들은 진짜 초조했다. 비슷한 길을 걸은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해 보니, 다들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부모가 된다는 건 돈 걱정, 커리어 걱정, 자신감 부족 등 별별 고민이 따라오지만, 결국 길은 있고 부모가 되면서 받는 행복함은 내 평생에 있어서 제일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사실, 진짜 큰 도전은 구직이 아니라 복귀 후에 찾아왔다. 아기를 키우면서 워라밸을 맞추는 것, 아기가 아플 때 회사 일까지 동시에 해내는 것. 구직에 비해서 실전은 정말 난이도 최상이다.
다음 글에서는 ‘복직 후 첫 해’의 트라우마/경험들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