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는 내가 글을 쓰는 걸 싫어했다

by 가을하늘 추천

그날부터 이상한 규칙이 생겼다.

내가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 그는 반드시 나타났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쳤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부정하기 어려웠다.

메모장 파일을 열자마자, 뒤에서 그 특유의 냄새가 밀려왔다.

“아… 또 왔네.”

그는 대답 대신 의자를 끌어당겨 내 옆에 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반쯤 걸터앉았다.

의자는 그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불안하게 삐걱거렸다.

No. No story.”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단어였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왜?”

물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내가 방금 쓴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퇴직 후에도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 단호하게.

그리고는 바닥에 침을 뱉듯, 알 수 없는 영어를 쏟아냈다.

그 말들 속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냥 생각 좀 정리하려는 거예요.”

내가 변명처럼 말하자, 그는 갑자기 키보드를 덮어버렸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내 마음도 같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여긴 무인도잖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말했다.

“무인도에서는 기록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래야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는 그제야 잠시 멈췄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동의가 아니라, 포기 쪽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You stay here.”

그가 말했다.

여기 있어라, 움직이지 말고, 나처럼.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이 남자는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거기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때 창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짧고 낮은 소리.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고양이 한 마리가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눈빛이 또렷했다.

“글 써.”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들렸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뒤돌아보니, 크루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의자만 조금 비틀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켜고, 커서를 깜박이게 두었다.

그는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만, 나는 이 무인도에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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