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발령 37일 차.
굳이 세어보지 않으려 했는데, 숫자가 먼저 떠올랐다.
달력에 표시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은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닳아진다.
그날은 회사에서 내 이름이 단 한 번도 불리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고, 메신저 알림도 없었다.
메일함을 몇 번이나 새로 고침했지만, 광고 메일 하나가 전부였다.
나에게 도착한 유일한 메시지는 보험 상담 안내였다.
복도를 한 바퀴 걸었다.
문이 닫힌 사무실들, 책상 위에 놓인 개인 컵들, 누군가의 외투, 다들 분명 어딘가에 있는데, 그 어딘가에는 내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부서 직원을 마주쳤다.
서로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거리.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였는지, 확인이었는지 알 수 없는 움직임.
“아, 네…”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그는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보이지만, 인식되지 않는 상태라는 걸.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했다.
분명 실체는 있는데,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조직이라는 빛에서 벗어나자, 나는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때 크루소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냄새도, 요란한 몸짓도 없었다.
그냥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You are still here.”
그는 낮게 말했다.
아직 여기 있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있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Day thirty seven.”
그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37이라는 숫자를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섬뜩했다.
“난 아직 회사 다니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에게서든, 나 자신에게서든.
그는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You are ghost.”
유령.
그 단어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유령은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한다.
벽을 통과하고, 사람을 스쳐 지나가지만,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오늘은 혼자였다.
웅크린 채로 햇볕을 받고 있었다.
“너는 그래도 보이네.”
말을 걸자, 고양이는 꼬리를 한 번만 흔들었다.
짧고 분명한 반응.
그것으로 충분했다.
뒤를 돌아보니, 크루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내 의자 위에, 보이지 않던 무게가 남아 있는 느낌만 있었다.
그날 퇴근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투명 인간이 되는 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무도 더 이상 확인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거구나.
그리고 그 사실이, 생각보다 오래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