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말로 오지 않는 줄 알았다.
며칠째, 아니 거의 한 주 동안 크루소의 흔적은 없었다.
냄새도, 기척도, 알 수 없는 영어도.
사무실은 다시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방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퇴직까지 남은 날짜를 손으로 세던 날이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접으며 계산하다 보니,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
마음이 괜히 분주해졌다.
그때,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아주 느리고, 조심스러운 발소리.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왔다는 걸.
크루소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말라 있었다.
수염도 정돈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흐려진 느낌이었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이 공간에 더 이상 깊게 발을 딛지 못하는 사람처럼.
“You leave.”
그가 말했다.
떠난다는 말.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해한 얼굴이었다.
무인도에 남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떠나는 사람의 얼굴.
“You write.”
그가 말했다.
네가 쓴다.
“조금.”
나는 웃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잊지 않으려고요.”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아니 어쩌면 아무 데서도 아닌 곳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낡은 나무 조각이었다.
표류자가 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그가 그걸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Memory.”
기억이라는 말.
나는 그 나무 조각을 만지지 않았다.
굳이 만질 필요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남아 있었으니까.
“You go home.”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명령도, 경고도 아니었다.
“고마웠어요.”
내가 말했다.
그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느리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지도 않았고, 닫지도 않았다.
그냥 그 방향으로 사라졌다.
창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짧게 울었다.
배웅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고양이들이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움직임 없이, 조용히.
“이제 됐어.”
그 말을 하자, 고양이들은 하나둘씩 흩어졌다.
마치 할 일을 다 마친 것처럼.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아까 그 나무 조각이 사라져 있다는 걸 알았다.
남아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로빈슨 크루소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무인도는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