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3개월 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by 가을하늘 추천

퇴직하는 날 아침에도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몸이 먼저 깼다.

출근하던 시간과 똑같았다.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정장을 입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점퍼를 걸쳤다.

회사에 도착하니, 사무실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서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이미 정리해둔 터라 가져갈 건 거의 없었다.

메모지 몇 장, 펜 하나, 그리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사원증.

그것들을 가방에 넣으니 서랍이 가벼워졌다.

나도 함께 가벼워진 것 같았다.

창가로 갔다.

고양이들이 있었다.

오늘은 세 마리였다.

햇볕이 드는 자리에 모여 있었다.

예전처럼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고양이도, 이 공간도, 이 시간도.

사무실 불을 끄기 전에 한 번 더 둘러봤다.

여기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견뎌냈다.

그건 분명한 일이었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로빈슨 크루소라면 이 장면을 뭐라고 썼을까.

아마도 그는 남았을 것이다.

나는 돌아가기로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긴장이 풀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는 느낌이 아니었다.

방향을 아는 이동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버스 창밖으로 봄이 완전히 와 있었다.

나무는 이미 초록이었고, 사람들은 바쁘게 걷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 내가 섞여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오래 살던 공간의 냄새.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의 냄새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서 있었다.

무인도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나는 무사히 돌아왔다.

크게 성공하지도, 특별해지지도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전 09화9화. 로빈슨 크루소의 마지막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