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다시 시작된 소설 쓰기

by 가을하늘 추천

‘이렇게 다시 시작되는 건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글쓰기 실력이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그 도움에 익숙해지는 순간, 글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어렵게 한 문장씩 만들어가는 일이 지금 정말 필요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당장은 확실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트러진 퍼즐을 맞추듯 계속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딱 들어맞는 조각이 나타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멈춰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억지로라도 다시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제목을 정하고, 대강의 줄거리를 적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역시나 50대 남자였다.
퇴사를 통보받은 시점은 평균 정년인 60세보다 빨랐다.
연금으로만 생활하기엔 이른 나이였고, 그렇다고 당장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은퇴 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건 소설 쓰기였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엔 재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쓴다.
하루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고양이의 털 색깔, 점심으로 먹은 구내식당 음식의 맛.

퇴근 무렵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어색한 표정,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느껴지는 적막함 같은 것들.

최근 들어 주어진 3개월 중 이미 한 달을 흘려보냈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혔다.
그 시간이 헛된 건 아니었을 텐데도, 그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차근차근, 한 자 한 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 내려갔다.

‘이곳은 정말 무인도일까?’

어쩌면 지금 이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남은 두 달을 이곳에서 혼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해졌다.

막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은 다시 무의식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떠돌다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했다.
구명보트에 실려 있던 물과 음식으로 두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으니까.

이제 무인도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타고 온 구명보트를 살폈다.
절반쯤 가라앉아 있었고, 파도와 바위에 부딪혀 깨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보트를 움직이게 하던 노는 부러져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헤엄쳐 건너기엔 물이 너무 차고 깊었다.
퇴행성 관절염을 핑계로 운동을 미뤄온 몸으로는 육지까지 버틸 자신도 없었다.

‘구조 신호를 보내볼까?’

하지만 이런 무인도 근처를 지나갈 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모든 게 갑자기 귀찮아졌다.


<다음 이야기>
요 며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대수롭지 않은 이명이라 생각했다.
무시하려 했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며칠째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소리에 집중했다.
처음엔 기계음 같았고, 어떨 때는 바람 소리 같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 소리는 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어디서 들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