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무인도에서는 대화할 상대가 없었으니까.
시간은 대수롭지 않게 흘러갔다.
이곳을 벗어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다.
눈을 뜨면 멍하니 수평선 너머, 어렴풋하게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목이 마르면 마시고, 배가 고프면 먹었다.
아무 데서나 잠들었고, 깨어나면 다시 육지를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났는지는 더 이상 세지 않았다.
무인도는 시간을 먼저 지워버렸다.
당연히 그날이 언제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시 책상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블라인드를 걷어내자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동안 왜 한 번도 걷어낼 생각을 못 했던 걸까.
햇볕이 들어온 사무실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이었지만, 빛만으로도 잠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래, 종종 햇볕을 들여야겠다.’
오늘도 사무실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후배가 떠난 뒤로 소설 쓰기는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쓸수록 공허함이 더 짙어졌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커피를 다시 한 잔 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인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런 기분이 들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보이는 건 수평선 너머 어렴풋한 육지뿐이었다.
그때였다.
귀에서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처음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주위를 다시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 무언가가 내 귓가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잠만 자고 있을 건가요?”
“누구십니까?”
“여기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왜 보이지 않는 거죠?”
“당신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처음엔 신기루라고 생각했다.
안개처럼 뿌옇던 형체가 서서히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아직… 선명하게 보이진 않네요.”
“당신이 아직 제 존재를 완전히 믿지 못해서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또 다른 당신입니다.”
“네?”
아무리 무인도라 해도, 그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다른 나라니. 내가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또 다른 나라고요?”
“네. 당장은 믿기 어렵겠지만, 저는 또 다른 당신입니다.”
“왜 나타난 거죠?”
“이대로 당신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입니다.”
“그럼 날 여기서 꺼내주려고 온 건가요?”
“아니요. 저는 당신을 구해줄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온 겁니까?”
“이대로 두면, 저도 당신처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라진다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시선을 피한 채 수평선 너머의 육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소설에 몰두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혼자 있으니 아무도 퇴근을 알려주지 않았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외투를 걸쳤다.
텅 빈 사무실을 한 번 훑어봤다.
사람이 빠져나간 책상들 때문인지 공간은 더 휑하게 느껴졌다.
천정형 난방기구 전원을 끄고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다.
순식간에 빛이 사라졌다.
어둠이 사무실을 집어삼켰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금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