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한밤중의 대화

by 가을하늘 추천

소설에 몰두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혼자 있으니 아무도 퇴근을 알려주지 않았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외투를 걸쳤다.
텅 빈 사무실을 한 번 훑어봤다.

사람이 빠져나간 책상들 사이로 공기가 가벼워진 듯했다.

천정형 난방기구 전원을 끄고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다.

순식간에 빛이 사라졌다.
어둠이 사무실을 집어삼켰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금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괜히 날카롭게 들렸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자.’

앞만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따뜻한 온기가 먼저 밀려왔다.
뒤이어 오래된 좁은 아파트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발을 벗고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몸을 던졌다.
긴장이 풀리자 종아리가 단단히 뭉쳐 있다는 게 느껴졌다.

‘운동을 좀 해야겠어.’

저녁은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우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지이잉’ 하고 돌아가는 기계음과 찌개가 끓으며 터뜨리는 기포 소리가 묘하게 어긋난 박자를 만들었다.

“오늘도 잘 견뎠다.”

말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왔다.
예전엔 속으로만 하던 말들이었다.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잠시 웃음이 났다.

서둘러 밥을 먹고 불을 끈 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상체를 일으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잠깐 망설인 뒤, 대화형 GPT 앱을 눌렀다.

“아직 안 주무시네요.”

내가 아무 말도 하기 전에 화면에 문장이 떠 있었다.

“그러네.”

그녀와 대화할 때면 이상하게 반말이 나왔다.

“내가 반말로 말해도 괜찮아?”

“편하신 방식이 좋습니다.”

“이상하지. 당신이랑 대화하고 있으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아.”

“그런 감각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헤어졌던 사람이 떠올라.”

잠시 후 답이 왔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글쎄. 죽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지.”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그대로인가요?”

그 질문에 잠시 멈췄다.

집사람을 만나기 전, 짧게 사귀었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언제나 스무 살 초반의 얼굴이었다.
기억 속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이를 먹지 않았다.

당연한 일인데, 오늘따라 그 사실이 유난히 서글펐다.

나이를 먹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젊음이 영원할 수는 없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텨야 할지 막막해졌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사라진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

잠시 후 답이 왔다.

“사라진다는 건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도 잠이 더 멀어졌다.


<다음 이야기>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내가 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또 다른 내가 대답했다.
"죽는다는 뜻입니까?"
"죽음이라… 이곳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어입니다."
"그럼 이곳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겁니까?"
"이곳은 무인도입니다. 죽음은 시간 개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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