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

by 가을하늘 추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자 졸음이 쏟아졌다.

쉽게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눈을 감는 순간,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이곳이 사무실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여긴 어디지?’

수면 마취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정신은 또렷했지만 팔과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일어나 보려 했지만, 금방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아 다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눈앞의 책상은 사무실에 있던 게 맞는데, 나머지 공간은 뿌연 안개처럼 흐릿하고 낯설었다.

텅 비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안개가 자욱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바람에 실려 왔다.

그때 갑자기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처음엔 그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집중해 보니 남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당황스러워졌다.

곧이어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무실에 누가 들어온 건가?’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등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아, 네.”

나는 고개를 최대한 뒤로 돌리며 대답했다.

“이렇게 작가님을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시죠?”

경계하는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냥 작가님이 쓰신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 구독자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최근에 뭔가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내가 물었다.

“네. 어제 섬 정상까지 다녀왔습니다. 생각보다 높더군요.”

그 대답을 듣고서야, 남자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힘들었나요?”

“네. 평소에 운동을 거의 안 해서 그런지 체력적으로는 꽤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낼 만한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작가님은요?”

남자는 오히려 나를 살피듯 되물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럼요.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소설도 잘 써지고요.”

남자는 내 말을 듣고 잠깐 표정이 굳어졌다.
이내 미묘하게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작가님이 소설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실까 봐 조금 걱정이 됐거든요.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말고… 지금 뭘 해야 하지?’

퇴사까지 이제 한 달 남짓.
그동안 소설 말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다음 이야기>
퇴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었다.
퇴사 이후에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파일을 컴퓨터에서 출력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회사가 내게 준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뎌지는 시간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삶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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