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래 봐야 10분 남짓이었지만, 사무실 공기가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마셨다.
커피는 이미 숙소에서 마시고 온 터라, 가벼운 차가 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평소 즐겨 듣는 재즈 음악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채웠다.
이젠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았다.
퇴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었다.
퇴사와 관련된 서류는 이미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다.
원래 가지고 다니던 짐이 많지 않아서인지 개인 사물함은 텅 비어 있었다.
책상 위와 서랍을 하나씩 정리했다.
핸드크림, 안경 닦는 작은 헝겊, 손톱깎이 세트, 만년필, 스마트폰 충전기.
챙겨야 할 물건이 생각보다 적어, 괜히 조금 민망해졌다.
‘어쨌든 덕분에 잘 버텼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혼잣말이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퇴사 이후에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적어 둔 파일을 컴퓨터에서 출력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사무실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책상과 의자로 바꿀 계획이다.
30년 가까이 써온 탓인지, 사무용 가구가 몸에 더 잘 맞는 느낌이었다.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과 실내수영장 정기 이용권도 집사람에게 부탁해 미리 끊어 두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체력 관리에 소홀했던 흔적이 요즘 들어 부쩍 느껴졌다.
집 안 분위기도 조금 바꿔볼 생각이다.
어둡고 낡았던 조명은 LED로 교체하고, 가구를 재배치해 작은 방을 서재로 쓸 예정이다.
집사람 직장과 가까운 곳에 작은 전원주택도 임차할 계획이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시켜주고, 남은 시간에는 소설을 쓰면 된다.
이제는 집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회사가 내게 준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자서만 고민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면 될 것 같았다.
무뎌지는 시간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삶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