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베란다 밖은 평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습관처럼 부엌으로 가 커피메이커 버튼을 눌렀다.
원두커피 향을 맡으며 그다음으로 한 일은 스마트폰으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과거에 와 있었다.
오늘은 한 달 전인 11월 9일 일요일이었다.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으로선 아무 의미도 없고, 어차피 원인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게 분명했으니까.
대신 오늘 내가 뭘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혹시 기억해내지 못한 중요한 일이나 약속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는 매일 해야 할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를 확인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요일이었고, 저녁에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다녀오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혹시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애써 떠올려 보았지만, 한 달 전 일이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한 하루였을 테니까.
저녁 무렵 병원에 다녀왔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내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으로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아내가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오늘도 꾹 참고, 아내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애썼다.
아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어쩌면 내년 봄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를 아내가 너무 가엾었고, 엄마를 더는 볼 수 없게 될 두 아이를 떠올리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신이 원망스러웠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 게 당연한 일이라지만,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해외에 유학 중인 큰딸과 군 복무 중인 둘째 아들과 차례로 통화를 했다.
둘 다 엄마 건강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엄마 곁에는 항상 아빠가 지키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결국 딸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둘째는 남자라 그런지 통화 내내 울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혼자 울었을 것 같았다.
둘 다 엄마보다는 나를 닮아 마음이 여리고 강하지 못하다.
그에 비해 아내는 정말 강한 사람이다.
절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일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달력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쳐 둔 날, 분명 아내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그동안 이어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오후 1시 반에 진료 예약이 잡혀 있었지만, 두 시간 전 피검사를 위해 1층 채혈실에 들르고 영상의학과에서 엑스레이 촬영도 해야 해서 오전에 집을 나섰다.
평일 오전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집에서 차로 30분쯤 걸리는 종합병원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옆자리에 앉은 아내의 표정이 평소보다 조금 굳어 보였다.
“여보, 긴장돼?”
“조금요.”
“긴장할 거 없어.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까 결과가 좋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네.”
“진료 끝나고 오랜만에 영화 볼까?”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에 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응. <4월이 되면 그녀는>이라는 일본 영화인데, 당신이 좋아할 만한 사랑 이야기야. 사토 타케루, 나가사와 마사미, 모리 나나가 나오고.”
“오! 재밌겠네. 좋아요. 영화 보고 저녁도 먹고 가요.”
“그래. 당신 좋아하는 초밥 먹을까?”
“익힌 게 아닌데 괜찮을까요?”
“위생적이면 문제없대. 유명한 집을 알고 있으니까 잘 부탁하면 돼. 아니면 살짝 데쳐 달라고 하든지.”
“살짝 데친 초밥이라… 그럼 ‘유비끼(ゆびき)’네요. 호호호.”
일 년 만에 아내가 활짝 웃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먼 곳을 바라보며 억지로 참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이미 검사 결과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