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보! 얼른 일어나요! 이러다 늦겠어요!”
침대 머리맡 탁상시계를 보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허둥지둥 침대에서 일어나 곧바로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며 양치를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오늘이 며칠이지?
세수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와 화장대 위 달력을 확인했다.
2015년 11월이었다.
나는 지금 십 년 전 과거에 와 있었다.
거실에서 켜진 TV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적인 자살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이 발생해 13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었다.
화면 한쪽에는 오늘이 11월 14일 토요일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토요일인데 늦었다니, 오늘 무슨 약속이 있었지?’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여보! 왜 그러고 있어요? 오늘 부장님이랑 골프 약속 있다고 했잖아요!”
‘아, 맞다. 오늘 회사 임원들이랑 골프 치기로 한 날이었구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연말 승진 심사를 앞두고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 테러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모임을 취소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원래 임원들은 이런 사건 사고에 유난히 민감했다.
“알았어. 준비할게.”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모임을 취소하자는 부장님의 전화였다.
상황을 아내에게 설명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 뉴스를 계속 지켜봤다.
십 년 전에는 갑작스러운 일정 취소에 아쉬움만 느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이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축구장에서 응원을 하다가, 음식점에서 웃으며 식사를 하다가, 혹은 극장에서 공연을 보다가 자살 폭탄과 총격으로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을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다음 주에는 휴가를 며칠 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11월 14일 월요일.
이날은 둘째가 태어난 날이었다.
네 살배기 딸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새벽에 양수가 터진 아내와 딸아이를 태우고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두 번째 출산이라 그런지 아내는 오히려 나보다 느긋해 보였다.
병원에 가져갈 짐과 입원 중 읽을 책 몇 권도 미리 가방에 챙겨 두었다.
초조해하는 나와 칭얼대는 딸아이를 달래며 아내가 말했다.
“OO야. 이제 곧 예쁜 동생을 만날 텐데 이렇게 아빠를 힘들게 하면 안 되지.”
“이제 누나 되는 거야?”
“그럼. 누나가 되려면 아빠 말 잘 들어야지. 떼쓰면 안 되고.”
“알겠어.”
“여보.”
“응?”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요. 어젯밤에 예쁜 아이가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기는 꿈을 꿨어요. 별일 없을 거예요. OO 잘 부탁해요.”
“알았어. 이따가 봐.”
“네.”
멀어져 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자신이 암으로 이른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겪고 있는 이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해 준다면, 과연 진심으로 믿어 줄까.
만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