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전, 아내를 만나기 전 잠시 사귀었던 대학교 후배와 헤어지던 날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녀가 알려준 자취방 근처의 작은 카페로 나갔다.
그녀는 먼저 도착해 창가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긴 생머리에 평소 즐겨 입던 흰색 바탕에 불규칙한 검정과 보라색 무늬가 들어간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업원이 커피를 내려놓고 간 뒤에도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건 그녀였다.
“미안해, 선배.”
“…”
“이렇게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어. 선배가 싫어져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야. 그냥, 선배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러는 거니?”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날 수는 없잖아. 선배한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
“그래서 말인데, 우리 여기까지 했으면 좋겠어.”
“후회 안 해?”
“응.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 다 내 선택이니까.”
카페 안에는 오래되고 느린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빌 에반스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앨범에 실린 곡들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곧 겨울이 올 거라는 걸 미리 알리는 듯한 늦가을비였다.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무렵, 그녀가 다시 침묵을 깼다.
“선배는 나랑 사귀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글쎄…”
“만약 지나온 과거 중에 단 하루만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선배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단 하루만?”
“난 선배랑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중에 스위스 인터라켄 근처 융프라우 캠프에서의 첫째 날이 제일 기억에 남아. 그날을 매일 반복하며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단 하루라…”
“선배는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나?”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테이블 위 냅킨으로 눈물을 닦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같은 사람 빨리 잊고, 선배한테 더 어울리는 사람 꼭 만나.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