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입원해 있다는 원래의 일반병실로 찾아갔다.
다행히 아내는 그곳에 있었다.
내가 옆에 온 줄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바짝 말라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퀭한 두 눈, 어둡게 변해버린 피부와 오랜 투병으로 하얗게 새치가 내려앉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애처로워 보였다.
아내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부디 행복한 꿈이었으면 좋겠다.
암 환자들만 모여 있는 병동이긴 했지만, 여러 명이 함께 입원해 있어서인지 방금 다녀온 호스피스 병동보다는 생기가 느껴졌다.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암에 걸린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죽는 날만 기다리며 우울한 표정으로 지내고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했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4년 동안 병원에 드나들며 보게 된 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여보, 왔어요?”
잠에서 깬 듯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일어났어?”
“회사는요?”
“오늘 하루 휴가 냈어. 당신이랑 하루 종일 있으려고.”
“어차피 내일 올 건데 굳이…”
“내일은 내일이고, 우리한텐 오늘이 중요한 거잖아.”
아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프기 전 환하게 웃던 아내의 모습이 순간 겹쳐지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울컥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오늘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요. 아이들은 다 잘 지내죠?”
“그럼! 누구 자식들인데! 하하하.”
아내의 일상은 매우 단조로웠다.
거의 하루를 꼬박 누워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음식물은 전혀 삼킬 수 없는 상태라 코에 연결된 튜브로 하루 세 번 액체 영양식을 간호사가 주입해 주었고, 24시간 손등에 꽂힌 바늘을 통해 진통제와 수액 링거를 맞고 있었다.
가끔 갈증을 호소해 빨대가 달린 물통의 보리차를 조금씩 마시기도 했지만,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인지 화장실도 전혀 가지 않았다.
“어제 거래처 김 과장과 회의가 있었는데 당신 안부를 묻더군.”
“…”
“그 친구도 이제 많이 늙었더라. 기억나지? 대학교 동창. 몇 년 전에 같이 해외여행도 갔다 왔잖아. 그쪽 회사도 요즘 많이 어려운가 봐. 경기가 안 좋으니 안 그런 데가 없긴 하지만.”
“…”
“어쩌면 이번에 나 지방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어. 아직 정해진 건 아닌데, 만약 지방으로 가라고 하면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 중이야. 당신 두고 내가 어떻게 지방으로 내려가.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우리 회사가 그래도 정은 있는 곳이라 그렇게 매정한 인사를 하진 않을 거라 믿고 있긴 하지만.”
“…”
아내는 몇 번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가, 이내 초점이 흐려지더니 스르륵 눈을 감았다.
계속 말을 잇다 그만두었다.
아침부터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아내 곁에서 침대 옆에 꼼짝없이 앉아 있다 보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픈 아내와 계속 대화를 이어 가기도 힘들었다.
깊이 잠든 걸 확인한 뒤 잠시 담배를 피우러 병원 밖으로 나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혼란스러웠다.
정말 오늘이 9일 화요일이라고?
어제는 수요일을 모두가 화요일이라 불러서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이 9일이라면, 나는 지금 일주일 전 과거에 와 있는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고, 누군가에게 말한들 믿어줄 사람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 밤이 지나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어떤 과거를 살게 될지, 이러다 영영 현재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밀려왔다.
‘내일은 또 어떤 과거를 살게 되는 거지?’
아침에 병원에 오느라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두었더니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문자 몇 개가 와 있었다.
모두 회사에서 온 연락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2월 9일 화요일
팀장님, 출근을 안 하셔서 계속 전화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문자 확인하시는 대로 연락 주십시오.
오전 09:00
12월 9일 화요일
팀장님, 내일 휴가 올리셨던데 혹시 오늘로 착각하신 것 같아 오늘도 휴가로 처리해 두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돼서 그러니 꼭 연락 주십시오.
오전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