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령의 버킷리스트 4

여행하는 작가 되기

by 가을하늘 추천

4. 여행하는 작가 되기


여럿이 가는 단체여행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나 여행은 혼자가야 제맛이다. 혼자 여행하면서, 그동안 이것저것 머릿속에서 쌓아만 두고 정리하지 못했던 엉킨 실타래들을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내기도 하고, 혹은 다 풀지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생각이 들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월요일 아침에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는) 욕구가 적당히 샘솟는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떠나는 허니문(honeymoon) 여행이 그중에서 최고이긴 하다.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마지막에 세 번 외운 주문


'허니문' 하니까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사람을 처음 만난 건 1994년이었고, 1997년 IMF 사태가 끝난 이후인 1999년 2월에 결혼했다. 그 당시 충분히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직업상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고, 국내 여행을 통해 직장 내에서 검소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여행지를 제주도로 정해버렸다. 물론 서로 동의하에 결정한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 잘못이 컸다. 우리에게 평생 한 번뿐인 '신혼' 여행이었는데 말이다.


결혼생활 내내 제대로 된 여행을 집사람과 함께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상의 이유로 상관에게 단순 여행을 목적으로 장기간 휴가를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특히나 학사 장교 출신이다 보니 타 출신의 장교들보다 진급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었고, 맡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노는 데만 신경 쓰는 사람처럼 보여서 진급이 안 될까 봐 그랬었다. 중령까지만 진급하면 그때는 눈치 안 보고 가족을 위해 휴가도 자주 쓰고 여행도 많이 다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중령에 진급하고 나서도 예전 습성이 변하지는 않았다. 중령으로 진급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상관에게 장기간 휴가를 가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럽다. 임무에 대한 사명감과 부서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부서장으로 보일까 봐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여행에 드는 비용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는 점이다(전역일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구두쇠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시대가 변했고, 새로운 분위기에 맞춰가며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나란 사람은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항상 미안하다. 솔직히 전역 이후에는 달라질 거란 장담을 못 하겠다.


그나마 중령 진급 이후에 집사람과 길게 여행을 한 건 결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를 다시 다녀온 거였다. 그게 2020년 1월이었는데, 그 당시 대구 신천지교회에 의한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지역이 격리되다시피 하던 시점이었고, 하필이면 내가 대구에서 근무 중일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 집사람과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긴 했지만, 여행하는 내내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고, 혹시나 감염되지 않을까(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부대에 복귀할 수 없으니) 노심초사했었다. 여행 후에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우리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 사진엔 온통 마스크 낀 사진뿐이다.


혼자 짧게 여행을 다녀온 적은 몇 번 있었는데, 장기간 다녀온 건 2020년 11월 6박 7일간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 당시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장병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부대 차원에서 장기간(일주일) 휴가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는데,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 6박 7일 휴가증을 올렸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타고 무작정 동부해안을 따라 내려가면서 본 바닷가 풍경도 좋았고, 숲 해설가가 동행했던 <환상 숲 곶자왈 공원>도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눈 감고 들었던 새와 바람 소리, 한라산 둘레길 중 <사려니숲길>에서 느꼈던 감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혼자 여행하는 내내 보이는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매일매일 느꼈던 감상을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글로 써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면서 이런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면 피곤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한 번만이라도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멋질 것 같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제주도에 거주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전역 후에 제주도에서 얼마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지역에서 몇 개월 정도 살아보면 그 지역에 여행 온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영어 회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볼까도 생각 중인데, 이건 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일단은 국내를 여행하면서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 그땐 해외로 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볼 생각이다. 전역 후엔 평일에도 언제든지 마음 내키는 데로, 여유롭게 전국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까 여행하는 작가가 되기에는 참 좋은 상황인데, 좀 더 확실하게 하려면 캠핑카를 질러버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캠핑카가 아까워서라도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을까?).


작년에 한미 연합사령부에 근무하면서도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4천만 원대 캠핑카' 네이버 검색결과(2025.9)>

4천만 원 대 착한 캠핑카 "있을 건 다 있다"(<아시아 투데이> 인터넷 기사, 2013.3.14., 김영민 기자)

'캠핑카'하면 주로 1억 원이 넘는 고가 수입 차량 또는 기존 차량을 직접 개조해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현대자동차가 4,000만 원대 '착한 가격'의 캠핑카를 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중략) 14일 본격 판매를 개시한 현대차의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는 기존 그랜드 스타렉스에 캠핑 기능을 더한 것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이용하기 알맞은 신개념의 소형 캠핑카다. (중략)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의 가장 큰 특징은 차량 실내에서도 취침을 할 수 있지만 지붕(루프)에 텐트 공간을 만들어 캠핑 분위기를 느끼며 취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현대차 관계자는 "기존 차량을 사제로 개조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며 "기존 렌털 위주의 고가 캠핑카 차량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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