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소심한 복수(復讎)

2025년 10월 2일 목요일

by 가을하늘 추천
나불갤러리에 처음 방문했던 날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이 사진 속 테이블을 기억하리라 생각된다. 선생님에게 수업에 대한 상담을 받고 학원비를 결제하는 곳이다.


나불갤러리에 다닌 지 한 달이 되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오늘도 나무 두 그루 그리기를 연습하고 나서 8절지에 풍경화 한 점을 그리기로 했다. 지난달과 같은 방식으로 한 달치 학원비(12만 원)를 결제했다. 한 달에 네 번 방문이라 1회에 3만 원어치를 배우고 오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언제쯤 생각이 바뀔까?


여기 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전문 화가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오는 사람은 없을 듯하고 대부분 취미 생활을 위해 오는 걸 텐데, 나도 그런 마음이 들 때까진 계속 다녀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만약 태어날 때부터 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발현(發現)되었을 테니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맞다. 오늘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썩 개운하진 않았으니까(역시 난 직업군인이 천직이었다).


오늘은 어떤 나무를 그릴까 고르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단풍이 듬뿍 든 나무들을 골랐다. 오른쪽 나무는 나뭇잎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에 표현해내기가 힘들었다.


나무는 확실히 그리기 까다로운 녀석이다. 같은 수종(樹種)일 경우 비슷해 보일 수는 있지만, 줄기와 가지의 모양, 잎 모양과 수량,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 등등 똑같이 생긴 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그 까다로운 두 녀석을 골랐다. 최대한 그리기 쉬운 녀석들로.


왼쪽 나무에 '물감 흩뿌리기'를 해봤는데, 사방으로 튀고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작업 전에 나무를 중심으로 자투리 종이를 삼각형 모양으로 덮은 후 흩뿌리면 주변이 깨끗하다.


지난번에도 연습이라 생각해서 대충 그려서 지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물의 농도조절에 신경 쓰지 못했다. 나무줄기의 디테일을 간과(看過)했다. 그림자 부분도 덜 신경 썼다. 그나마 평소 가지고 있던 그림에 대한 내 생각과 선생님의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 조금은 안도(安堵)했다. 그것은 사물을 관찰해서 그림을 그릴 때 보이는 것과 똑같이 그릴 거면 사진을 찍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했었는데, 앞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 사물의 특징 중에 내가 그림으로 표현해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전체적인 균형(Balance)은 신경 쓰면서 말이다('균형이 무너지면 그림이 어색해지고, 보는 사람도 힘들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함).


이 그림도 <숲과 산, 자연 풍경화 그리기 - 풍경 수채화 수업>의 저자 '고바야시 케이코'의 그림인 것 같은데 그림 제목과 설명이 빠져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평소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게 어떠냐는 지속적인 선생님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교재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리기로 했다. 아직은 사진을 보고 그려낼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하늘 그리기(가제)'를 그려봤다.


이번 주는 미완성으로 남겨뒀다. 정확히는 시간이 없어서 못 끝냈으니 '남겨졌다'가 맞겠다. 이번 추석 연휴가 길어서 이전 그림들보다 바짝 말라 있겠다.


오늘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촉박했다. 여유가 없다 보니 그림이 내 의도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그림은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다음번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다의 색상이 너무 초록 초록하고, 바닷물에 비친 섬 그림자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역광이라 섬도 좀 더 진하게 덧칠이 필요할 듯하고. 이번이 8절지로 그리는 세 번째 풍경화라 다음 주 네 번째 풍경화를 마지막으로 하고, 다다음 주엔 본격적으로 아르쉬지(Arshes) 캔버스를 구매해서 전시용 작품(?)을 그릴 예정이다.


평소 핑크색 하늘은 사진으로 잘 찍지 않는데, 수업 들은 것도 있고 해서 한 번 찍어봤다. 어젯밤부터 비가 내려서 그런지 긴 연휴의 시작인 첫날 아침인데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24색 물감을 쓰다 보니 오페라(OPERA, 핑크색 계열) 색깔이 없어서 아쉽다는 얘길 몇 번 들었는데, 아마도 위 사진처럼 하늘을 그릴 때 필요한 색깔인 듯하다. 미완성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섬과 맞닿은 하늘에 은은하게나마 오페라 색깔을 넣었다.


P.S. 제목이 왜 '소심한 복수'인가 하면...


지난번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뒤에서 사진이 찍혔었는데, 나도 선생님을 몰래 찍어봤다.


그림이 대충 그려지면 선생님이 어색한 부분을 보정(補正)해준다. 보정된 그림은 확실히 균형이 느껴진다. 역시 미술은 연습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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