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복기(復碁)와 실전(實戰)

2025년 10월 23일 목요일

by 가을하늘 추천

신기한 일이다. 벌써 일곱 번째 방문인데도 학원 입구에만 서면 설렌다. 오늘은 특히나 본격적으로 아르쉬지 캔버스에 작업을 하는 첫날이라 그런지 더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브런치 연재 글에 넣을 사진을 얻기 위해 갤러리 앞에서 항상 한 컷을 찍게 되는데, 구도도 삐딱하고 전체적으로 어색한 게 꼭 지금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금요일이 <병영문학상> 발표날이다!!!)


오늘따라 사진의 구도도 삐딱하고 어색한 게 꼭 내 마음 같다.


지난번 시간에 그리다 만 '하늘과 구름'을 마저 그려볼 생각으로 물감을 숙소로 가져갔었다. 친형에게 선물 받은 붓 세트와 학원에서 가져온 물감으로 주말에 혼자서 그려봤는데, 학원에서 그릴 때와는 달리 옛날 습관이 다시 나왔다. 구름도 어색하고, 바다도 어색하고, 배도 배경과 겉도는 느낌이었다.


아직은 예전처럼 혼자 숙소에서 그림을 그릴 단계가 아니다.


바둑에서는 복기(復碁)란 게 있다. 복기는 '한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출처: 국어사전)'인데,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을 각오로 학원에 가져가봤다. 역시나 평소 내 그림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져가길 잘했다.)


(자전거 뒤를 잡아주듯) 선생님이 보정을 해주니까 배가 바다에 진짜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을 그릴 땐 빛의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그림자를 그려 넣어야 한다. 특히 물에 비친 사물과 그림자는 다르다. 물에 비친 사물은 고유의 색이 포함되어야 하고, 배가 수면과 닿는 부분을 기준으로 배와 배경이 만나는 경계 부분은 항상 깨끗하게 처리해야 입체감이 살아난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사물과 똑같을 수 없고, 물결에 따라 형태가 변하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려 넣어야 한다. 선수(船首)와 선미(船尾) 윗부분은 빛에 반사되는 하이라이트를 넣어준다. 돛과 돛대의 색상도 너무 검정만 쓰면 어색하다. 돛대와 배가 연결된 선은 최대한 가늘고 직선이 되게 그려야 하지만, 중간중간 끊어지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이것으로 8절지 그림 그리기가 끝이 났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번에도 우여곡절(?) 끝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최대한 종이가 상하지 않게 물티슈로 닦아냈더니, 혼자 그린 그림에 비해 구름의 경계가 흐려지고, 진하게 칠한 어색했던 부분이 옅어졌다. 멀리 보이는 섬도 그렇고. (선생님이 '영업비밀'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농담'이라고 말해줬기 때문에 여기에 적었다.)


아르쉬지 캔버스에 보고 그릴 그림을 핀터레스트에서 골랐다.


지난주에 선생님과 이번 시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름 고민하다 핀터레스트에서 본 그림을 그려보기로 하고 가져갔는데, 그 그림이 사람이 그린 게 아니라 AI가 합성한 그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깜빡 속았다. 근데 선생님은 한 번에 보고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 신기한 일이다.


본격적인 실전(實戰)이다. 근데 스케치부터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자신이 없다.


P.S.1. 스케치용 연필이 이렇게나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니! 근데 보통은 '샤프'를 쓴다는 걸 알려줬다. 미술용 연필은 심 끝을 뾰족하게 유지하면서 그리는 것도 오랜 연습이 필요하기에 시간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샤프를 쓴다고 했다.)


<스테들러 마스 루모그라프> 연필 세트. 독일에서 제조되었고, 제도 및 드로잉에 적합한 전문가용 연필이다.


P.S.2. 미술학원에 다니기 전엔 몰랐었는데, 새벽하늘이 원래 이렇게 예뻤나 싶다. 바이올렛, 오페라, 오렌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 하얗게 빛나는 건 금성(Venus)일까?


P.S.3. 제24회 <병영문학상 작품공모전> 심사결과가 금요일 오전에 발표되었다. 아쉽지만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도 카카오페이 증권의 <투자 영감> 문구가 가슴에 와닿는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이 하나의 질문에 답해보세요. 얼마나 간절히 원하나요?'

이전 06화6화. 가제(假題): 고백(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