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일기(秋天日記) 1편

2025년 2월 8일 토요일 ~ 6월 14일 토요일

by 가을하늘 추천
올해 초 네이버 블로그 <재우아빠의 배스낚시통신>에 올렸던 짧은 글 몇 편을 추려 제24회 <병영문학상> 수필부문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추천 일기> 1편이다. 10월 24일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홧김에 '내 서랍'에서 파일을 지워버렸었는데, 출력물이 남아 있어서 오늘 다시 입력해서 올린다.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간에, 어찌 되었건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니 내 브런치에 올라갈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잠시나마 너를 홀대해서 미안했다.


2025년 2월 8일 토요일


199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부터 지금까지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2027년 2월이 되면 만 30년을 다니고 퇴직할 예정인데, 주위에선 다른 직장을 찾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지금 딱히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많지는 않지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매달 일정 금액의 연금이 나오니 집사람이랑 둘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에 내가 뭘 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녔다면,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년 4월부터 11개월간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 주어진다.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될 것 같아서,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지금 고민해도 그때 되면 또 마음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리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은 하루하루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보통 낚시를 가는데, 이번 주말은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숙소에서 그냥 음악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음악 듣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 밑에 짧게나마 몇 자 적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이렇게 평소보다 좀 길게 적는 것도 지금은 재미있는 내 소일거리다.


오늘 점심은 본가에서 해결할 예정이다. 어머니가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데 갈 때마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자주 찾아뵙는 게 맞는 거 같아서다.


최근 유명인들의 비보(悲報)가 자주 들여온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추울 땐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운동한다고 밖에 나갔다가 오히려 몸이 축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추울 땐 가스비 아끼지 말고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놓고, 음악 들으면서 따뜻한 차나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025년 2월 9일 일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추운 느낌이다. 일기예보 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막상 실제로 밖에 나가보면 역시나 어제처럼 추울 테지만 말이다. 오늘도 본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원래 주말에는 한 번만 가는데, 이번 주는 어제에 이어 또 가게 되었다. 어제 어머니께서 감자탕을 끓이셨다고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걸 내가 내일 점심에 다시 오겠다 하고 숙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본가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게 조금은 의무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구에 온 목적이 본가에 자주 가서 부모님을 뵙는 거니까, 이번 주 주말처럼 앞으로도 계속 점심은 본가에서 먹을까 생각 중이다. 물론 점심을 준비하시는 부모님 입장에선 꽤나 귀찮은 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들지만, 내가 만약 어머니의 입장이었다면 숙소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고 있을 둘째 아들이 눈에 밟힐 것 같다. 주말마다 다 큰 자식 몫까지 챙기시느라 몸은 불편하시겠지만 마음은 편해지지 않으실까 짧은 생각을 해봤다.


며칠 전 유명한 트로트 가수 한 분이 돌아가셨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데, 어머니께선 그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병으로 오랫동안 주위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 고통 속에서 죽는 것보다는 잠을 자다가 혹은 심장마비로 고통 없이 죽는 것도 복이라고 하셨다. 폐암으로 투병 중이시라 최근 몸무게가 많이 빠지셔서 야위신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식으로서 안쓰럽고, 특별히 해드릴 께 없다는 게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다.


'편하게 죽는 것도 복이다'란 말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혼자 상상해 본다. 힘드시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치료 잘 받으시면서 가족들 옆에 계셔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모든 식구가 바라는 거 아닐까 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금 하고 있는 표적항암치료제가 효과가 있다고 하니, 입맛이 없어 많이 못 드시더라도 억지로라도 드시면서 힘내셨으면 좋겠다.


날씨가 좀 풀리면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팔공산에라도 드라이브나 다녀와야겠다. 집안에만 하루 종일 계시는 부모님 모시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벼운 산책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최근 읽은 책들의 공통점은 저자가 대부분 오십을 넘긴 중년이었고, 하나같이 이제부터는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 말고 '네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되돌아보니 다들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니까 그렇게 한 거고, 졸업 후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인생이려니 하며 살아왔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생활을 한 지가 벌써 28년이 넘었고, 2년 뒤 퇴직을 하게 되는데, 이후의 계획이 아직 구체적으로 없다. 현재까지는 재취업할 생각은 없고, 연금이나 타 먹으면서 유유자적 살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 20년 공부하고, 30년 직장에 다녔으니, 이젠 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근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뭘까?


요즘 나는 퇴직하고 뭘 할 거냐고 물어보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국문과를 졸업했고,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막상 2년 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새 그림 그리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집 주변에 새가 많이 보여서 새를 그려보겠다고 결심하는데, 그리다가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자신이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잘 그려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야기 중간에 이런 내용도 나온다. 외국에서 유명한 사진작가가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과제물을 제출하게 했다. 그룹을 두 개로 나눠서 한 그룹에는 사진의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니 많이 제출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높게 준다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니 한 장을 제출하더라도 좋은 사진에 점수를 주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예상외로 '질'보다 '양'을 강조한 그룹에서 더 좋은 사진들이 많이 나왔단다.


글쓰기든, 그림 그리기든, 노래 부르기든 간에 '남들보다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이 나를 주눅 들게 하고 점점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써나가야겠다. 비록 실력은 여전히 중학생 수준이지만, 그림 그리기도 꾸준히 해야겠다. 코인노래방도 열심히 다니고.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어제 나보다 9살이나 어린 남자가 쓴 책을 읽었는데, 생각하는 게 나랑 비슷해서 조금 놀랐다. 그는 지금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살겠다는데, 나도 지금 내가 생각한 대로 살고 있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조금 실망했다) 그가 유명한 가수라서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 거다. 그는 나보다 어리지만 나보다 더 용감하기 때문에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리니까 용감할 수도 있다)


이 세상을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 어쩌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철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가장 자신에게 솔직한 거 아닌가 싶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를 위해, 혹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주위 눈치를 보고, '이런 걸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다 지레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이제 슬슬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주위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나만을 위해 살아도 되지 않을까?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 낚시를 못 갔다) 이런 주말은 실내에서 놀아야 할 것 같은데, 뭘 하면서 놀아 볼까? 평소 같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TV로 무료영화를 보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혼자 술을 마시거나,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예전 원주에서처럼 프라모델을 만들어 볼까?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며 숙소에서 혼자 조립하고 색칠했었는데. 아니면 오랜만에 두툼한 스테이크를 구워볼까? 코로나 19로 몇 개월간 부대 밖을 자유롭게 나가지 못했을 때 종종 구워 먹었었는데.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도 굽고, 레드와인도 한 잔 곁들여서...


모두 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문제는 내가 지금 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낚시를 할 수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하고자 하면 언제든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인데 하지 않고 있다. 의욕상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는데, 요즘 나에게는 그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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