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일기(秋天日記) 17편

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 11월 13일 목요일

by 가을하늘 추천

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한 주 쉬었더니 의욕이 마구마구 솟구칩니다.' (거짓말)


'다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거짓말)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글이 막 쓰고 싶어 졌습니다.' (거짓말)


'하루 종일 맘에도 없는 말만 잔뜩 쓰다가 끝날 것 같습니다.'


요즘 날씨가 그래서 그런지 주말 내내 김광석(1964년생, 1996년 사망, 향년 31세) 노래만 들었다. 운전하면서 듣고, 집에서도 듣고. 심지어 코인노래방에 가서도 김광석 노래만 불렀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 중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란 곡이 있다. 원곡자는 김목경(1957년생)이란 기타리스트인데, 유튜브를 찾아 들어보니 김광석이 부른 게 더 나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아무튼 노래 가사 전체를 인용하게 되면 저작권에 침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대략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시험 때문에 뜬 눈으로 지내던 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당신도 기억하는가? 세월은 흘러 여기까지 왔고, 인생은 황혼으로 기운다. 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렸던 눈물이 이제는 모두 말라버렸다. 그 눈물을 기억하는가? 세월이 흘러가니 흰머리가 늘어가고, 모두 다 떠난다고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래놓고) 왜 나보다 당신이 먼저 죽는가? 나만 혼자 두고 왜 한마디 말도 없는가? 여보, 안녕히 가시게.


가사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요약해보려 했는데 잘 안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60대 부부인데 아내가 먼저 (큰 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남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아내를 원망한다. 왜 나만 혼자 두고 떠나면서 말 한마디 없냐고. 아내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노래가 끝이 나는데,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부의 나이가 60대인데 왜 제목이 '노부부'인가? 원곡자 김목경이 이 곡을 쓸 당시인 1984년엔 60대가 노부부일 수도 있겠으나, 김광석이 이 노래를 부를 때라면 60대는 절대 노부부일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즘 같아선 한 80대는 되어야 노부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80대는 오버인가? 그럼 70대?)


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2020년부터 전자도서 대출목록을 사무실 PC에 엑셀프로그램으로 작성해 저장해두고 있다. 2020년(사천) 17권, 2021년(대구) 74권, 2022년(대구) 43권, 2023년(진주) 43권, 2024년(평택) 45권, 2025년(대구) 84권이다. 평균을 내어보니 연간 51권의 책을 대출했다. 월평균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4.25권을 읽은 셈이다. (물론 대출해서 한두 장 읽다 재미가 너무 없어 다 읽지 않고 자동반납된 책들도 꽤 있다) 특이한 건 2021년과 올해 대출한 책의 숫자가 평균을 훌쩍 넘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니 2021년은 사천에서 근무하다 대령 진급을 하기 위해 자진해서 대구로 간 해였고, 많은 양의 독서가 진급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올해는 왜 책을 많이 읽었을까? (2025년은 평택에서 근무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구로 온 해다) <병영문학상>에 응모할 작품을 쓰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월별로 몇 권이나 읽었는지 따져봤다. 1월 8권, 2월 21권, 3월 12권, 4월 14권, 5월 4권, 6월 8권, 7월 6권, 8월 6권, 9월 3권, 10월 2권이다. 월평균 8.4권인데,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읽은 책이 무려 47권으로 평균 15.7권이나 된다. 오히려 <병영문학상> 작품공모전 안내가 있었던 7월부터 결과발표가 있은 10월까지 읽은 책은 4.25권으로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숫자들이 나왔을까? 나는 그 해답을 <추천 일기> 1편과 2편을 다시 읽고 알아냈다.


'지금 하는 일 외에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녔다면,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추천 일기> 1편 - 2025년 2월 8일 토요일)


'요즘 은퇴하고 글을 써보겠다고 열심히 책도 읽고, 네이버 블로그에 틈틈이 글도 올리고는 있지만, 역시 난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추천 일기> 2편 -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요즘 나는 퇴직하고 뭘 할 거냐고 물어보면 작가가 되겠다고 대답한다... 평소 책 읽는 건 좋아하는 편이라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2년 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걱정된다.' (<추천 일기> 1편 -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내가 매일같이 블로그에 평범한 사진들을 올리는 이유처럼 앞으로도 계속 <추천 일기>는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OOO의 기억법>? <OOO 결심>?)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여자를 왜 죽인 겁니까?"


광역수사대장 박 소령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전역도 이제 얼마 안 남으신 듯한데, 완전범죄가 될 거라 보신 겁니까? 그동안 군 생활한 게 아까워서라도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 좀 해보세요, 김 중령님!"


처음부터 그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몹시 취해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그녀가 날 경멸하고 있다고 느꼈다. 평소에도 날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빴지만,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날은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만약 과일 깎은 칼이 테이블 위에 없었더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박 소령의 말처럼 그동안 군 생활한 게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이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아래였고, 자연스럽게 나를 오빠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그녀는 불우한 집안 분위기 탓에 일찌감치 집을 나와 학교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살았는데, 나는 4학년 내내 그녀의 원룸을 내 집 드나들 듯하며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위해 그 해에 공군 장교로 입대했다. 소위로 임관하고 고향인 김해로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그때부터 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첫해는 서로를 자주 보지 못해 만날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들었는데, 해가 지나갈수록 조금씩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전역이 임박해서 (취업을 고민하다)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장기가 확정되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같은 특기 후배와 결혼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2년 연장 후 전역했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만 전념했다. 몇 번의 전속과 이사를 반복하며 평범한 직업군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인 2009년 가을 어느 날,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광주에서 대대장을 할 때였는데, 그날도 대대 회식이 끝나고 장교들끼리 근처 호프집에서 2차를 하기로 했다. 운영통제실장이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가게가 있다며 안내한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헤어진 지 거의 10년 만이었다. (계속?)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오늘은 수능이라 10시 출근이다. (물론 나는 1시간 전에 도보로 출근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군 생활하면서 부서장보다 항상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금까지도 내 출근 시간을 정한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다고 뭔가 내 인생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오히려 항상 출근 시간에 임박해서 사무실에 도착하는 동료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나서 숙소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어쩌다 늦잠이라도 자고 출근 시간에 거의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죄책감마저 느꼈다. 전역하면 이제 출근할 곳도, 지각이라는 개념도 없다. (조금 슬픈?)


오늘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그래 봐야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일어난 거지만 기본이 묘했다. 10시까지 출근이라 전날 늦게까지 영화 두 편을 몰아서 봤다. <님포매니악(2013)>이라는 영화였는데 1, 2부로 제작되어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님포매니악(nymphomaniac)'은 '여자 색정증(색광증) 환자, 색광녀'란 뜻이다. 출연한 배우들이 너무 유명해서 그냥 단순한 야한 영화가 아니라 뭔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아 제목만 그렇게 정한 게 아닐까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야하긴 되게 야했다. 영화 내내 남녀의 신체 주요 부위를 뿌옇게(blur) 처리한 게 계속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플라이 낚시 얘기도 나오고 수학, 예술, 철학, 역사, 문학, 종교, 정치 등등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들이 이건 단순히 야한 영화가 아니야라고 감독이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거 야한 영화네라고)


샤를로트 갱스부르(영화 <귀여운 반항아>로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 샤이아 라보프(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를 타고 다니던 미쿡 남자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영화 <듄>에서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으로 나온 스웨덴 배우, 왜 까만 기름 속으로 몸을 담그던 뚱보 악당 있잖아), 우마 서먼(영화 <킬빌>하면 떠오르는 여주인공, 근데 이 영화에선 비중이 그렇게 크진 않았음), 제이미 벨(영화 <빌리 엘리엇>에서 주인공 아역 배우로 데뷔했고, <설국열차>에도 나왔다는데 난 기억이 안 남. 근데 영화에선... 더 얘기하면 스포라 그만하겠음), 월렘 대포(영화 <스파이더맨>에서 '그린 고블린'으로 출연한...) 등등


근데 여주인공 '조'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스테이시 마틴(1990년생, 프랑스)이나 영화를 찍은 감독 라스 폰 트리에(1956년생, 덴마크)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영화 <은교(2012)>의 김고은(1991년생), <인간중독(2014)>의 임지연(1990년생), <마담 뺑덕(2014)>의 이솜(1990년생), <봄(2014)>의 이유영(1989년생), <아가씨(2016)>의 김태리(1990년생)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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