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을 하는 이유.

험담에 지친 나의 휴식방법.

by 발돋움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누군가의 험담을 듣고.

어쩌면 일상일지 모른다.

힘없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끼리 공통의 적을 만드는 일은 뛰어난 공감대 형성효과와 무리의 끈끈함을 증진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다.


험담은 비단, 힘없는 개미군단의 단합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왜? 굳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공유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대중적으로도 이질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감정임을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아, 나는 욕할 만하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고, 화가 났던 이 부분에 대해 타인이 위로해 주길, 힘들었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길, 공감해 주길 바라는 인간의 안정과 인정욕구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화가 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발설하는 일이 좋기만 할까?

나는 어제 그 때문에 휴가를 냈다. 휴식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 미움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감정은 듣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때 그 사람의 스트레스가 나에게로 전가되면, 나는 이제껏 험담의 대상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감정을 간접 경험하게 되고, 그 사람을 험담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부분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나 아닌 모든 것을 나에게서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해왔건만

실제로는 하나도 행하고 있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의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 못해 알맹이는 죄다 빠지고 껍데기만 나부끼는 바람인형만 같고,

경매에 나온 물건처럼 나도 누군가의 매서운 평가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매겨진 가격표를 목에 매달고 쇼윈도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지극히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럴 때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진다. 다시 온전한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밥에 뜸을 들이듯. 효소를 넣어 적절한 온도에서 요구르트를 발효시키듯.

긁히고 쓰라린 상처에 새살이 돋아 날 수 있도록.


나는 그래서 미싱을 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원단이.

나의 가위질 한 번으로 내가 만들 작품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되고.

레이스 노루발이 지나간 자리엔 레이스가.

말아 박기 노루발이 지나간 자리의 원단은 올 풀림 없이 깔끔하게 접혀 박히게 된다.


그중에서도 모든 원단의 끝자락이 모여있는 부분을 말끔하게 감싸안는 마지막 바이어스 작업은 미싱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미싱작업의 꽃이다.


올이 풀려 실들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원단길이가 제각각이라 맞지 않았던 모든 부분이 말끔해진다.

나에게서 돋아나 다시 나에게로 향했던 많은 비난, 실망, 자괴감.

그 난무했던 모든 비아냥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완성된 작품으로 위로받곤 한다.


모든 천으로 만든 제품은 모두 원단에서 풀려나온 너저분한 실들을 품고 있고,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는 원단길이로 인한 빈틈을 품고 있다.

원래 완벽함이란 존재하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틈이 있고, 모나고, 덜 자란 부분이 듬성듬성한 나도 제법 잘 살고 있고, 나름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만들어낸 작품이 나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아침 10시부터 점심, 저녁 식사와, 아이들 학원 픽업시간을 제외하고 12시간을 매달린 미싱작업으로.

침대 매트리스 커버 1점과, 소파 커버, 소파쿠션 커버를 완성했다.

뭐 하러 그런 걸 먼지 날려가며 만들고 있냐는 신랑은 모를 것이다.

내가 한 일은 소파와, 매트리스 커버를 만드는 노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멘틀 휴식작업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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