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신발까지 리폼

삭스부츠의 변신은 무죄.

by 발돋움

삭스 부츠가 작년부터 사고 싶었다.

발과 발등, 발모양을 감싸는 흐름이 부츠에서 느껴지는 투박함을 배제시키면서도 편안함과 나름의 보온성을 선사해서 마음에 들었다. 중요한 건 디자인과 소재. 힐의 느낌을 주는 날렵한 뒷굽과 앞선. 그리고 뒷굽의 소재가 가죽이 아니길 바랐다.(하루 만에 찍히는 게 부지기수라...)

그렇게 나만의 디자인을 찾아 인터넷 공간을 누비고 다니길 1년.


드디어 찾았다!

"고객님의 니즈를 완벽히 소화해 낼 제품입니다~"

매장 점원이 '솔'톤으로 오른손으론 구두를 들고 왼손으로 구두를 받쳐들며 내게 내밀법한 삭스부츠가 컴퓨터 화면에 떡 하니 나타나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건... 사야 돼..."

십수 년 동안 산을 헤매다 산삼을 만나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처럼 나는 산이 떠나갈 듯한 외침대신 날렵한 손놀림으로 카드번호를 화면에 입력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 집엔 삭스 부츠가 도착했다.

부츠의 핏과 소재의 느낌은 화면 그래로였다. 만족스러운 표정과 우아한 손동작으로 부츠를 집어 발에 끼워 넣었다.

그런데... 발이 부츠에 잘 안 들어간다.

우아했던 표정은 온대 간데없고 구겨진 미간과 앙다문 입술, 치켜 올라간 눈썹으로 부츠를 끼울 발을 하늘로 치켜올리고 등과 허리로 거실바닥을 5분간 누비고 다녀서야 부츠는 온전히 발에 안착 되었다.

'고객님의 니즈를 완벽히...'라고 이야기한 매장이 있었다면 찾아 나설 뻔했다. 니즈는 무슨...


부츠를 거실 한가운데 세워 놓고 무언의 심판이 시작됐다.

'너... 아무리 이쁘면 뭐 하냐? 신발에 발이 안 들어가면 신발이냐?'

'저는 부츠를 신은 고객님의 발을 핏을 위해 신축성을 최대한 배제한 소재를 사용하여 발모양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을 뿐입니다.'

'아니.. 발모양이 이쁘면 뭐 하냐고. 너 한번 신으려면 10분 전부터 씨름을 해야 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고객님이 그런 제품을 원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

팔짱을 끼고, 고개는 45도, 눈은 치켜뜬 채로 앉아 따박따박 말대답할듯 새초롬하게 서있는 삭스부츠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그래, 지퍼를 달자!"


이제 하다 하다 구두까지 리폼을 하나 싶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원하던 디자인에 핏이니 반품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신고 벗기가 극한으로 불편한 이 녀석을 그냥 둘 수도 없었다.


같은 색깔의 지퍼 2개를 준비하고, 연필 초크와 미싱을 꺼내고 그 옆에 삭스 부츠를 올렸다.

원하는 길이만큼 초크로 표시를 하고 가위를 들어 표시선까지 부츠의 안쪽 발목부위를 세로로 가위질했다. 그리곤 지퍼를 잡아 부츠 양옆의 천을 잡아가며 손바느질했다. 1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드디어... 완성!

검은색 지퍼에 검은색 실이라 멀리서 보면 표도 잘 나지 않고, 무엇보다 신고 벗을 때 무지하게 편해졌다.


나는 그래서 리폼을 좋아한다.

기성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사용하면서 나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제품에 자신을 맞춘다.

어쩌면, 자신의 요구에 딱 맞아떨어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가 참을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고집이 센 독불장군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옷에 튀어나와 거슬리는 태그하나만 제거하더라도 옷에 대한 만족도가 배가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내게 맞춤한 물건으로 변하는 마술은 리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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