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 언니 시점.
'띠리리릭. 띠리리릭.'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마감일이라 한시도 모니터에 꽂힌 시선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데 전화기는 계속 울려댄다. 사무실 사람들은 또 어디로 도망들을 갔는지 누가 일을 도와 달라나! 바쁠 때 전화라도 좀 받아주면 좋으련만. 어찌 됐든 사무실엔 내가 있고, 사무실에 전화기가 울리니. 나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전화가 오면 받고, 일을 주면 처리하고, 까라면 까는 게 직장생활이지 않는가.
예산담당은 유독 숫자에 민감하다. 0.1이 틀어지면 결과는 완전 산으로 간다. 그러면, 본사에선 보란 듯 연락이 빗발칠 것이고, 예산자료 때문에 생산계획까지 틀어졌다며 각 팀에선 노발대발할게 불 보듯 뻔하다. 그리되면 자료를 손보기 위해 내가 가진 엑셀 자료의 수식들과 회사 프로그램을 일일이 맞춰 봐야 하며 그렇게 되면 오늘도 정시 퇴근은 굿바이다. 아들 녀석이 코로나까지 걸려오는 바람에 집 안팎으로 물샐틈없이 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데 거기가 마감까지 겹쳤으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초초집중 상태다. 아마 손등에 모기가 날아와 그간의 못다 한 식욕을 채우고 핫플이란 소문에 친구, 동생, 사돈에 팔촌을 불러와 물어데도 일단 결과 입력값은 맞춰 놓고 손바닥으로 내리쳐 그 녀석을 압사시킬 것이다.
오른손에 쥔 마우스로 모니터에 펼쳐진 무수한 숫자들 중 하나를 클릭하며 왼손으로 더듬더듬 수화기를 집어 들어 왼쪽 귀에 가져다 댄다.
숫자하나라도 놓칠세라 신경을 쓴 나머지 회사 수신멘트를 잠깐 잊은 사이 수화기 너머 발신자가 먼저 흐느낌으로 존재를 알려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딸이었다.
"엄마. 엄마. 엉.. 응.."
"여보세요? 연희야? 왜? 왜 울어?"
"엄마. 어. 엄마. 삼촌. 삼촌이 심정지래."
가슴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쿵 하고 내리 꽂히더니, 이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현재로선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아시다시피 혈액투석을 30년 넘게 해 오셨고, 심장의 굵은 혈관 4곳은 사진상으로 보셔도 알겠지만 이미 다 막혀 있어요. 우회 혈관이 이렇게 까지 자라났다면 심장 통증을 느낀 지 괭장히 오래되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
오래된 심장통증 이야기를 듣자 눈이 동그랗게 된 내가 동생을 돌아보자 동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동네 병원에 감기약 받으러 가 콧물, 기침, 가래요라고 말하는 듯. 그덤덤함이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병원 원무과에서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앞서는 차 뒤꽁무니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서울에 큰 병원 가보자"
"안가."
차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동생은 조용히 대답했다.
"뭐든 해봐야지 뭘 안 간데"
"아유... 하루이틀이야... 이러다 마는 거지 뭐. 안가."
동생은 조용히, 그러나 또박또박 단호하게 말했다. 결심을 굳힌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 '안가'가 끝없이 메아리쳤다. 그런 동생을 단호하게 끌고 대학병원을 가보지 못했다. 둘째 항암치료 중이라 서울을 오가며 분주했지만, 동생집은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엄마 상을 치른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 엄마랑 같이 살다 엄마 먼저 가고, 더 외로웠을 텐데. 정신없이 울고 후회하며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모든 게 죄스러워 울음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응급실 모퉁이 한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시선은 커튼 쪽으로 쏠렸다.
"조민기 님 보호자신가요?"
"네"
"이 쪽으로 오세요"
뚜벅뚜벅 응급실의 드리워진 커튼으로 걸어갔다. 커튼 안은 죽음. 그 밖은 살아 있는 자의 삶.
마치 커튼 하나가 죽음과 삶을 나누는 경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오른손을 벗어 드리워진 커튼을 조심스래 걷어 나는 죽음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동생은 양팔에 링거가 꽂혀 있었고, 입엔 기관 내 삽관용 호스가 산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심장 리듬을 그리는 모니터엔 자동으로 심장 마사지를 하는 기계의 리듬에 따라 작은 파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영혼 없는 기계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미 동생에게선 살아 있음의 어떤 징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산자의 예의와 최선이라는 명목하에 죽어가는 자에게 고통만을 떠넘기는 행위만 남아 있을 뿐.
"이 기계 빼주세요."
가족의 동의가 떨어지자 생명 연장의 모든 기구는 신속하게 제거되었다. 억지로 심장을 눌러대던 기계가 제거되자 널을 뛰던 심장 파형도 조용히 일자로 들어 누웠다. 주렁주렁 달고 있던 링거도 순식간에 제거되었다.
마침내 동생은 아무것도 없는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마치 처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상태처럼 말끔하고, 편안하게 침대에 누웠다.
이제. 혈액 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 받지 않아도 된다.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심장을 짓누르는 고통도 겪지 않아도 된다.
깜깜한 밤을 혼자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
누나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을 더 이상 가지지 않아도 좋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 진정한 평안이 찾아온 것이다.
"아침 7시 30분 혈액 투석을 시작하셨고, 9시쯤 심정지가 왔습니다. 보호자분 휴대전화로 연락을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 집으로 연락을 했고요. "
진동으로 해놓고 가방에 처박아 놓은 휴대전화가 떠올라 눈물과 함께 한숨이 목구멍을 턱 막아섰다.
"바로 CPR을 진행했지만. 안타깝게도 회생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 가족분이 오셨으니. 환자 사망 선언을 하겠습니다. 조민기 님은 현재시간 9시 30분 사망하셨습니다."
동생에겐 엄마와 아빠가 없다. 처와 자식도 없다. 피붙이라고 있는 건 표현도 잘 못하고 퉁명스러운 누나 하나뿐이다. 거기다 아들 녀석은 코로나에 둘째 딸은 항암치료 중이라. 빈소는 신랑과 나, 첫째 딸 이렇게 셋뿐이다.
4개월 전 엄마상을 치른 후라 회사에 부고도 올리지 않았다. 엄마와 똑같은 병원, 같은 장례식장, 같은 호실에 동생의 상을 치르지만, 4개월 전과는 많이 다르다. 엄마 상을 치를 때는 동생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생이 없다.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사진도 남아 있지 않아 20년 전 가족사진 속 동생사진을 확대해 빈소에 걸린 동생의 얼굴은 내 마음처럼 희미하고, 쓸쓸하다.
지금 밖엔 커튼을 드리운 듯 장대비가 쏟아진다. 저 빗줄기 너머에 민기가 있다면, 민기는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엄마랑, 아빠와 같이 있으니 거기선 외롭진 않을게다. 아프지 않을 테니 우울하지도 않을게다.
그럼, 괜찮은 거지? 잘 가. 누나도 조금만 슬퍼할게. 조금만 미안해할게.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자 동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