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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Feb 08. 2024

어른답다는 나이가 많다고 다 주어지는 수식어가 아니다.

아이 졸업식을 다녀오고 나서.

알레르기가 심한 첫째 졸업 꽃다발로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준비해 학교로 향했다. 아이 등교 시키며 늘 지나치기만 했던 운동장을 저벅거리며 가로질렀다. 한때 인조잔디로 뒤덮여 있던 운동장은 환경호르몬 논란과 운동 중 화상 위험성등으로 대대적인 공사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마사토가 곱게 깔려 있었다. 졸업 축하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이 중앙현관 입구에 걸리고 강당 옆으로 사진 촬영을 위한 부스 준비로 몇몇 선생님들과 재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린 날씨와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막연한 걱정, 두려움이 머물러 있는 학교의 공기는 좀처럼 가볍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강당 학부모 좌석이 앉아 있으니 곧 1, 2 학년 학생들이 강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앳되고, 동그란 눈망울에 자그마한 키. 아직 보송보송한 솜털이 묻어 날 듯한 1학년과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듯 심오한 표정과 억지로 끌려 나온 테가 역 역한 무딘 행동의 2학년은 굳이 이름표색으로 학년을 구분하지 않아도 단박에 표가 났다. 그런 아이들이 앞뒤 친구들과 조잘거리고,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들락날락하고, 휴대폰 사용을 못하게 눈총을 쏘는 선생님을 피해 몰래 들여다보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건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일 것이다. 그 나이면 무턱대고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일 테지.


곧 졸업생들이 강당으로 들어오고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졸업장 수여가 이어졌다. 일일이 아이들의 얼굴을 띄우고 별명과 마지막 하고 싶은 말까지 덧 붙여가며 단상에서 교장선생님이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한 학급이 50명을 육박하고 학급이 5개 이상이었던 나의 졸업식 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광경이다. 하긴 그때는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운동장에 졸업생들을 모두 세워 놓고, 지금은 단어 하나 기억나지 않는 길고 긴 훈화를 주저리주저리 듣다 쓰러지는 아이들까지 생기곤 했으니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건 여러 가지로 무리일 듯싶다.

졸업장을 수여하고 이어 아이들 귀에는 하나도 들어앉지 않을 축사가 이어졌다. 이사장, 교장, 학교운영위원장의 길고 긴 축사의 내용 중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학교 운영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단상에 오르더니 대뜸 졸업생 중 한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이 학생의 아버지는 oo일보 정치부 기자고 자신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동문인데, 학교를 1등으로 졸업해서 자랑스러운 동문이라며 일으켜 세운 그 아이는 아버지를 본받아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일단 첫 번째 뜨악했던 점은 지금 모인 이곳이 개인 연회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주인공은 그 아이가 아니라 졸업하는 108명의 모든 학생이다. 그런데 굳이 자신의 동문이 그 아이 아버지임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그 아이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할 이유가 무언인가 말이다. 거기다. 어떤 신문사 정치부 기자고 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면 훌륭한 부모이고, 공부도 직장도 내세울 수 없이 변변찮으면 훌륭한 부모가 아니란 말인가? 대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배움을 전해야 할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저런 사람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니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때 더 없는 부끄러움과 치욕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사람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 중에 호명되어 일어섰던 그 아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아이와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동행한 사이라 나는 그 아이의 가정사를 조금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던 상황부터 그 아이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서울에 어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이는 할머니와 어머니 손에 오롯이 키워졌고, 아버지와는 왕래가 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을 잘 보러 오지도 않는 아버지를 훌륭한 아버지라고 칭하고, 그런 아버지를 본받으라니. 어쩌면 졸업식 이후 그 아이는 이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어른답다는 말은 나이를 먹은 이에게 모두 주어지는 수식어는 아닌 것이다.


지겨운 축사 이후 졸업생들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드럼, 기타, 키보드, 보컬로 구성된 밴드는 드럼연주를 시작으로 멋진 스타트를 보여줬다. 곡은 슈퍼스타와 이젠 안녕. 멋진 반주에 이어 시작된 두 보컬의 실력은 놀라웠다. 보컬의 노래가 시작되면서 졸업식장은 돌연 숙연해졌다. 음정과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은 두 보컬을 보면서 나는 한 없이 대견했다.

[그래, 이거지. 이런 게 배움이지. 졸업식은 이래야 되는 거지!]

완벽할 필요가 없는 학생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며 발전하고 있는 이 아이들의 미래는 정말 기대 됐다. 잘 되지 않아도 노력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배우고, 이해해 가는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는 BTS 공연장에라도 온 듯 열심히 손뼉을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을 들어 리듬을 맞추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아이와 돌아오며 뜨끈한 국밥과 수육을 마주한 체 허심탄해한 대화를 이어갔다.

무소속을 축하한다고, 그리고 3월부터 다시 소속될 그곳에서 너의 발전을 응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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