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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Sep 04. 2024

나의 경험치

엑셀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화면하나에 엑셀 파일 5~6개가 떠있는 것은 기본이다. 건강관리실 방문현황, 검진결과, 관리대상자, 배우자 검진 예약, 체중관리 대상자 등등등 거기다 인터넷으로 자료검색하며 문서라도 올릴라치면 파일을 내렸다 올렸다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모른다. 


문뜩 결혼 전 엄마가 요리하다 요리 재료가 든 소쿠리를 들었다 놨다 하며 '집구석이 좁아서 뭘 할 수가 없네' 하던 장면이 쓱 스친다. 그래 좁은 건 불편하다. 내 모니터는 좀 좁다. 아니 좀 많이 좁다.


내 책상 위를 떡 하고 버티고 있는 두대의 모니터는 18인치다. 양쪽으로 딱 맞물려 붙여놔서 엑셀 파일을 길게 펼치면 왼쪽 오른쪽 모니터를 오가며 작업할 수 있다. 처음 한 개 모니터를 쓰다가 두대로 늘려 쓸 때만 해도 그렇게 자유로운 이동은 활보였고, 신세계였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랄까? 만족을 모르는 존재랄까? 암튼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두대인 모니터도 불편한 점들이 속속 발생하고, 다른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와이드 모니터에 눈이 돌아가다 못해 시기를 발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체지방을 측정하러 사무실을 잠깐 들렀을 때 내 모니터를 보며 고대 유물을 바라보듯 "엄마 이걸로 일이 돼?"라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당당하게 "당연하지 얼마나 좋은데!"라고 말했었는데...


그러다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같은 팀 계장님이 집에서 사용하던 모니터를 회사에 가지고 온 것이다.

"애들이 노트북을 사용해서 데스크톱 처분하면서 모니터 가져왔어. 사용할 수 있음 해" 

옳거니... 

나는 당장 반듯하고 와이드 하며 날씬한 한 녀석을 움켜쥐었다. 

[이 모니터는 이제 제 겁니다!]를 외치며 당장 자리로 돌아와 작은 모니터를 뜯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전원을 연결하고 케이블을 꽂았다. 

두둥... 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

그런데, 모니터 화면이 이상했다. 해상도가 떨어지고, 바탕화면에 깔아 둔 파일 글씨가 흐리고, 마우스도 왼쪽 오른쪽으로 자유롭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모니터에 메뉴 버튼을 눌러 해상도, 명도, 밝기를 조절해 가며 무던히 애를 써도 원래 있던 왼쪽 모니터에 비해 새로 설치한 오른쪽 모니터는 보면 볼수록 눈이 아프고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30분 동안 씨름하다 바로 백기를 들었다. 모니터 포기! 이 화면으로는 도저히 일할 수 없다로 결론을 내리고 나는 다시 원래 있던 모니터를 설치하고 거치대를 옮겼다.


모니터 전원을 켜니 반짝! 원래 말끔했던 해상도의 화면이 떴다. 그래 이거지... 이래야 되는 거지...

흐리고 눈알 빠질 것 같던 화면을 보다 원래 내가 보아왔던 깔끔한 바탕화면을 나는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다. 5분마다 변하는 자연환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선명한 글씨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참 안타깝다... 

잃어버려 봐야 소중함을 아는 나의 이 우매함이. 

그렇게 겪고도 아직 상황마다 겪어보지 않고는 잊어버리고 사는 망각이.


그런데, 그런 경험이 있어서 나는 지금 내 주위의 사람, 물건, 직장 등등이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많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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