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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06. 2023

이왕 이렇게 된 것 과정을 즐기자

시험관 하기 2주전

 12월이 시작되었다. 벌써 1년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슬슬 업무도 정리하고 있으며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난 1년간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유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파했고 울었다. 난임병원을 다녔고 인공수정도 했다. 그리고 나의 지인들은 수 많은 임신소식을 나에게 들려주고 그 소식에 마음아파하기도 했고, 질투와 진심의 축하를 해주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지난 주말 친구들의 모임에 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여서 좋았다. 멋진 장소를 빌려서 밖에서 화롯대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고 조개도 구웠다. 그리고 그 화롯대에 장작도 마음껏 태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친구들의 모임의 목적인 청첩장모임이었다. 한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아내분과 함께 모임을 열었다.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실 모임 전부터 그 친구가 혼전임신으로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가면 벌써 결혼 3년차에 접어든 나에게 질문할 친구들의 '애는?' 이라는 말에 스트레스 받을 나를 알고 있어서 가지 말까 많이 고민했었다.


 막상 가니, 한번정도 나에게 물어보고 나는 그냥 친구들에게 '더 놀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은 빠르게 결혼을 한 편이다. 내 결혼 이후에 많은 여자 친구들이 결혼을 했고 이제 남자아이들도 슬슬 결혼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 중 결혼한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품고 있다. 어쩌면 이르게 결혼한 나만 제자리인 것일까봐 겁이 났다. 그렇지만.. 모임 가는 것을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은 


 '인간관계를 언제까지 피할 수 없다'


 라고 말을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 언제까지 모든 인간관계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친구도 만나야하고 어른들도 만나야한다. 용기를 냈다. 친구들 모임에 갔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른 이야기도 많이 했다.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친구의 여자친구 이야기, 근황 이야기도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임신한 친구의 아내분하고 이야기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화제가 아이로 갈 수 밖에 없어서 그 순간에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냥 밖에 나가서 불멍을 즐기도 했다. 불멍을 하면서 밖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의외로 아이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고싶다고 하는 친구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비자발적 딩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최근에 임신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는 과연 아이를 감당하고 내 인생을 결정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많이 생각하면서 딩크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공감이 많이 갔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려야하는 순간이 나에게 찾아온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친구를 데려다주면서 결혼준비의 어려움과 결혼생활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래도 3년차 결혼생활에 접어 들었다고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 결혼준비하는 기간을 조금더 즐겼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하면서, 그 기간을 남편과 잘 즐기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을 마치고 막상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아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품기 위한 1년간의 과정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눈물이 났고 괴로웠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때로는 남편을 원망했다.

스트레스와 후회로 얼룩진 내 1년이, 내 31살 인생이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시험관 준비를 알고 있는 회사 동료분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냥 해보려고 한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ooo씨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다행이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하나도 긍정적이지 않은데 나를 불쌍히 보는 시선이 싫어서 긍정적인 척 하는 것인데, 말을 뺏고 나니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과정을 즐기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거 뭐있나. 물론 실망하는 순간들도 있을거고 멍드는 내 배를 보면서, 주사를 맞으면서 질정을 넣으면서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시험관 채취하는 과정을 하면서 눈물이 흐르고 복수가 차서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냥 아파하고 슬퍼하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라고 생각하지 말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이고 이게 내 인생이다. 나는 그저 이 순간순간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순간 남편과 묵묵하게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나에게 아이가 찾아온다면, 그 아이를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드리고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다. 지난 1년의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과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것이다. 쉽게 가졌다면 결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이가 없는 부부에 대한 이해를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 넓고 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1년이었다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멋지게 분명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쉬는 동안 그냥 편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다. 어디가서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가지, 다음 스케줄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할 때는 괜찮지만 여행 스케줄을 잡지 못하는 것 그것 한가지는 아쉽다. 연차가 자유롭지 못한 직업이라서 이런 부분이 아쉽다. 그래도 주말에 남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고 신년운세도 보러갈거고 콘서트도 보러 갈것이다. 그리고 남편이랑 즐겁게 행복한 순간들을 계속 보낼 것이다.


 이 순간을 즐기자. 낙담하고 울지말고 그냥 즐겁게 지내자. 올 한해는 실패했고 내 인생의 성과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연말이 다가오니 조금씩 성과가 보인다. 공모사업에 당선되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칭찬도 들었다. 일적으로, 가정적으로 꽤 괜찮은 한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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