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위에 붉은색

by 김남희

1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 생각만 해도 어색하다. 자연의 주기에 걸맞은 인간의 바이오리듬 같은 게 연상되는데, 나는 그리 건강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밝은 하늘에 뜬 붉은 해보다도 흰 캔버스에 떨어진 붉은 물감을 더 오래 들여다본 것 같다.


흰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보면 두 가지 동작이 연상된다. 먼저는 침입이다. 캔버스 밖에서부터 물감은 투척되어, 침입한다. 다른 하나는 돌출이다. 바깥에서 칠해진 물감은 마치 살을 찢고 흘린 피처럼, 내파의 결과처럼 보인다. 그림과 이미지는 멈춰있을 때조차 역동적이다. 그건 파국 혹은 변화지점을 만드는 몸짓이다.

흰 캔버스의 붉은 물감은 어쩐지 순교자도 떠올리게 한다. 순교자의 피. 순교자의 머리. 참수당한 세례 요한과 투석형에 처해진 스데반이 그려진 성화를 상상하게 한다. 순교자의 도상은 가장 난해한 문제다. 시대는 점점 타인의 신체적 고통을 잔인하고 탐욕스럽게 소비한다. 거의 대부분의 세계 종교 신자들, 특히 그중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고대에 기원했음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현대의 예수를, 현대의 바울과 베드로와 세례 요한과 스데반을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선 현대 사회는 오직 일단 살려두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개인의 존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생명정치를 작동시키기에,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맡긴 순교자들의 선택을 어리석게 취급한다. 또한 현대 사회는 순교자들처럼 거듭 표상되고, 이미지로서 재현되는 사람들을 얕잡아 본다.


이는 이미지로서 재현되는 사람들이 현대에는 주로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익명성을 잃는 순간 도리어 익명의 혐오표현과 차별의 표적이 되는 시대이기에, 익명성 상실은 두려운 것이 된다. 반대로 익명성의 유지는 (몇몇 직군을 제외하고는) 권력의 표지가 된다. 사회는 약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축소시키면서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놓고 약자들에게 자신의 약자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약자는 생존권을 위해서 익명성을 포기한다. 끝없는 이미지들의 범람 속에서 무료한 사람들은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미지로 재현되기를 각오한 자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조롱은 만만한 사람들을 헤집으며 자기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약자성이 구질구질하기 때문이고, 이와 같은 낮은 미감은 그들의 낮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원인이라는 식의 궤변이 이어진다. 이때 ‘어리석은’ 순교자가 순교자로서 고통받는 자신을 드러낸다면, 그들은 위엄을 잃고 약자로서, 추레한 모습에 멍청하고 저급한 인간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그래서 점차 현대 문화에서는 고통받는 타인을 이미지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하지 않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취급하지 않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전에는 신체적 고통과 고문을 겪는 신체들이 지금보다 즐비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존엄하게 취급받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고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타인의 고통을 즐기지 않도록 고상한 재현 문화를 만드는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그 사회는 (그렇기에) 순교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의와 진리를 위해서 고통받기를 선택한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존엄한 대우, 존경의 시선을 받지 못한다. 도리어 치료의 대상이 된다. 현대를 사는 고대의 종교들은 현대와 고대 사이의 격차와 모순 가운데 서서 순교자를 존숭 한다. 순교자가 마지막으로 존경을 받던 시절의 그림들을 걸어두면서. 그런 그림들은 요즘엔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신자들은 흰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두고서도 상상한다. 옆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피 흘리는 사람이 만든 피 웅덩이를 상상한다.



2

출신 여고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꿈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대로, 지금의 생활이 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인가 보다. 애들의 교복 치마나 바지 길이를 칼 같이 잡아내는 학생주임은 신입의 용모와 스타일에 오지랖을 부리는 상사로 바뀐다. 동료에게 성희롱이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사람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배운다는, 어리숙한 학생인 척한다. 그러니 생활하다 보면 학교 다닐 때가 계속 생각나고, 그래서 꿈에서까지 계속 학생 때가 떠오르고, 깨고 나면 다시 학교 다닐 때가 어른거리는 식이다.


내가 다녔던 서울 변두리의 여고는 근방에서 괜찮은 평판의 학교였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이 집단적인 조울 기질에 휩싸여 있었다. 나름대로 바깥에는 단풍 드는 나무니 꽃이니 토끼우리니 하는 식으로 꾸며놓았지만, 창문마다 설치된 새 안전바가 시야를 분절하면서 엄중하게 자살 시도를 경고했다. 또 각종 쌍욕과 센 척이 난무하는 쉬는 시간의 위악적인 명랑함과 침울한 침묵에 짓눌리는 수업 시간은 일종의 짝패라는 사실을, 학생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선생들은 수업 시간에 분위기를 북돋우려고 흰소리를 했다. 어떤 사람은 공부 잘하면 좋은 남자를 만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공부 잘해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했다. (너네는 남들이 질겁할 만큼 어린 90년대생이니까. 어떻게 서태지가 하여가를 발매했을 때 태어날 수 있니.) 그 흰소리들의 구림에 대해서 또다시 분통을 터트리고 싶진 않다. 단지 분위기를 띄우려는 목적밖에 없는, 의미랄 게 없는 얄팍한 농담일 뿐이었으니까. 아니고서야 그렇게 서로 모순되는 말을 늘어놨을 리가. 어쨌든 실없는 말에 따라온 잠깐의 웃음은 뒤따른 오랜 침묵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다들 자신의 깊은 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해맑게 “뛰어내리고 싶다!” 소리치기 전까지.

우리의 비명이 학교생활과 수업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는 쉬는 시간에 비명을 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국어 시간에 우리는 수능에 나올만한 한국 현대시를 외워야 했는데, 정해진 분량을 암송하지 못하면 손바닥에 매를 맞았다. (체벌금지조례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때였다.) 안전을 위해서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고, 하교 뒤에는 외진 곳에 가지 말고, 혹시 가야 하면 친구들과 동행하라고 했지만, 야간자율학습 종료 시간은 학부모 동의서에 기재된 것보다 한 시간 느렸다. 여자애들은 더 야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앞서가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우리의 여자 됨을 더 강조하던 남자 교사는 헌 책상을 버리러 갈 때 애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배려 없는 교육과 끈질기게 성별로 집단화되는 경험이 충돌하면서도 공존했다. 21세기란 단어도 옛날 말처럼 느껴지는 2010년대는 학교가 형편없이 낡았다는 사실도 숨겨버렸다. 어쩌면 그건 선생들의 모순된 농담이 은연중에 상징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잘할 때 다가올 보상은 너의 ‘여성성’을 실감하게 만드는 좋은 남자다. 그렇지만 너무 욕심을 드러내고 주어질 것에 불만족하는 건방진 여자가 되진 말아라. 너는 그런 사회에 넘쳐나는 속물로 타락하지 말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성공적인, 그러나 성공에 도취되지 않은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보기 드문 여자가 되어라. 그들의 깊은 뜻을 따라가기에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흠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죄인들이 교화되듯이 교화되어야 했다. 사실 이건 당시에 유행하던 감상적인 인터넷 게시글이 우리에게 준 통찰이었지만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라고 시작하는 문구) 학교 별관에서 여자애들 둘이 키스하고 몸을 만지다가 선생에게 들켰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는 현실감 있는 표현이 됐다.

원죄를 공유하는 사람들처럼 연대 책임을 지는 여자애들. 여자임을 드러내면서도 숨겨야 하는 여자애들. 이를테면 생리를 하면서도 몸을 똑바로 가누는 아이. 끙끙거리다가 일정을 놓치지 않는 아이. 늘 그래야 한다 말할 만큼 선생들이 노골적으로 뻔뻔했던 것도 아니고, 애들이 마냥 순했던 것도 아니지만, 수능 날이 생리 주기와 겹치는 애들은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나는 개중 하나. 그때 사 먹은 약은 한약처럼 고약했던 냄새가 났다. 정말 수능 날이 한참 지나고, 거의 두 달도 넘었을 때까지 생리가 미뤄졌다. 그때 속에서 사라졌던 피의 웅덩이를 상상한다.


3

요한복음서에서 기재된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아마 성경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유명 일화일 것이다. 그건 실패한 피 웅덩이로서, 흰색 위의 붉은색이 악에 대한 징벌임을 (투석형) 역설적으로 나타낸다. 그림으로써 흰 캔버스 위의 붉은 물감이 정지 상태에서 정지를 폐기시켜 버리는 것과는 정반대로, 투석형 직전의 모습은 투석하는 장면을 만들면서 폐기시킨다. 이미지도 운동도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 고요한 부재 속에서도 사람들의 눈에 어른대는 돌과 피는, 머릿속의 범례들을 불러온다. 파국과 변화점과 순교자와 악녀는, 그 안에서 나란히 놓일 수 있다. 순교자는 오인을 통해서, 악녀는 발각을 통해서 죄인이 되며 형벌에 처해진다. 그들의 처형은 파국이자 변화된 국면을 가져온다.

예수와 간음한 여인은 변화된 국면으로 간다. 간음한 여인에게 투석형이 최종 실행되진 않았지만, 그건 아브라함이 이삭을 직전에 제물로 바치지 못하는 일과 비슷하다. 이미 그 정도로 받은 셈, 거둔 셈 칠 수 있다. (여자도 피 웅덩이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들은 단둘이 남는다. 1세기의 유대 문화가 가정하는 상황의 불경함을 제거한 채로, 새롭게 타자 대 타자로서 마주하는 공간을 만든다. 적대자의 예상과 다르게, 그들 사이에는 어떤 섹슈얼한 분위기도 없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하고 묻는 예수 앞에서 여자는 죄로 고통받는 인류의 전형이 된다. 그녀는 상황을 똑바로 보고 명료하게 말한다. “주여 없나이다” 그녀는 예수로 인해 속죄받은 인간인 자신을 마주한 사람이 되었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향해 “가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부활과 대속을 직접 상징(예표)한다. 피 웅덩이는 그녀에게서 예수로 옮겨졌다. 형벌은 계속 형벌이지만, 형벌은 부활을 통해 움직이며, 영광을 상징하지만, 폐기될 것이다. (이렇게 형벌에 부과되는 영광의 규모와 죽음-부활이 만드는 운동성은 일반적인 순교자와 신의 아들의 차이리라.)


여기서 다시 상황을 돌이켜본다. 예수는 사람들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직전에 땅바닥에 글을 썼다. c.s 루이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 이 장면이 포함된 걸 흥미로워한다. 여인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이 그 글의 뜻을 물었지만 예수는 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일렀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라는 대목이 이어지는 것도 그렇고, 그 대목이 설명되지 않고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으로 내용이 전환되는 것도 그렇고, 많은 목회자들의 설명과 달리 글은 예수의 말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거라 주장한다. 그리고 불가해하고 불연속적인 표현이 들어간 당대 기록물은 신약성경뿐이며, 이것이 성경이 역사로 설명되지 않는 진리의 기록이라는 근거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진리를 주창하는 종교에 거부감 있는 사람만 아니라면) 나름대로 흥미롭다. 루이스와는 달리 예수가 율법을 기록했다, 랍비나 선지자의 말을 적었다, 아니면 여인과 통정해 놓고 이제 와서 그녀를 죽이려 하는 남자들의 비밀을 글로 폭로한 거다, 아니다 기타 등등을 주장한 목사들의 주장도 흥미롭다. 하지만 예수의 글이 적어도 사람을 죽이려는 분위기를 차단하는데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 주장들이 다 인정하는 것일 테다. 생활의 위협과 맞서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게 글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예수는 그때의 일시적인 글을 제외하고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반대로 제자들은 무수히 많은 글들을 썼다. 예수는 금방이라도 지워버릴 수 있는 땅바닥에 글을 썼지만, 제자들은 잘만하면 천년도 넘게 보존 가능한 종이에 글을 썼다. 예수는 이웃의 위험을 모면하는 몇몇 일 이외에는, 자신을 위해 위협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활을 통해 위협을 패배시킬 것이 분명했고, (거의 예정되어 있었고) 그저 위협을 온전히 감내하기만 하면 되었다.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위협의 회유와 협박과 유혹으로부터 방책을 세워야 했다. 또 그들이 포교한 사람들의 방벽 역시도. 글은 그렇게 불안 속에서 쓰인다. 답답한 마음을 수업 중에도 공책에 줄글을 쓰며, 내가 느낀 것도 비슷했다. 하얀 공책 위에 쓰이는 붉은 글씨. 저주하고 저주를 통해 강조하기 위해서 썼던 붉은 글씨. 애초에 잊을 수가 없는 일들을, 감정들을 붉은 잉크 펜으로 눌러쓰고 있으면 내가 쓰는 말들이 나를 울타리로 둘러줄 것만 같았다. 그건 최초의 입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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