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증

by 김남희

주로 손, 팔과 쇄골 주변, 허리 부분을 긁게 된다. 이런 습관도 몇 달째. 침구를 세탁한다든가, 매일 청소를 하고 적당한 로션과 연고를 사는 등, 할만한 조치는 다 취했다. 남은 건 피부과에 가서 알맞은 병명을 알아내기. 운이 나쁘면 대학병원 검진을 예약해서 온갖 알레르기 검사하기. 만약에 대학병원을 가야 한다면 의사들이 파업하는 마당에 어떻게 예약하지.

손이나 팔을 긁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이제는 남들에겐 부산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스스로는 읽는 호흡을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긁는 행위는 남들과 함께 할 때 보다는 혼자 있을 때 더 심해진다. 이런 점은 나의 가려움증이 내 안의 내밀한 정신건강의 문제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나의 야뇨증이 비뇨기과의 소관이 아니라, 정신과에 가야하는 문제였던 것처럼. 야간뇨를 줄이는 것처럼 나의 생각들도 줄일 수 있도록, 약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 것처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때로는 충분한 영양이 없어도 되는 면역력이 나의 정신에는 없으니까. 또한 몸에 익은대로 하는 청소와 빨래에서보다는 생각과 언어를 다듬어야 하는 글쓰기에서 내 가려움증이 도지기 때문에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후, 새로운 종류의 알레르기 발생원, 새로운 종류의 해충들, 내가 사는 습기가 많은 구옥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외부적 환경과 내재적 정신의 조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니까. 둘을 분리하기 어려울 만한 상황도 생긴다. 예를 들면, 나는 매주 토요일에 있는 윤석열 탄핵 집회를 1년 넘게 다녔다. ‘강제 징용 제3자 변제안’ 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외부의 의제가 나의 불안정한 정신에 투하되면, 내 마음은 더 착잡해지고, 그러면 나는 서울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 여의도공원 일대를 쏘다니며 소리를 지르고는 했던 것이다. 종종은 주중에도.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행동이 몸에 익어버렸다. 성대에 무리가 가는 건 시시각각 느꼈지만, 피부가 안 좋아지는 건 차마 몰랐을 수도 있다. “추운 날에도 나라를 지키려 거리로 나오시느라, 피부가 많이 상하셨죠?” 어느 시사 채널에서 막간에 광고하던 마스크팩 업체가 아니었다면, 의심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회할 때는 3시간 넘게 밖에 있었고, 추워질 때도 별로 껴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립밤이니 핸드크림이니 마스크니 챙길 정신도 없었다.

어쨌든 이제라도 무엇이든 해야 한다.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자기를 더 돌보아야 한달까. 지난 12월 3일부터 시작된 계엄 사태 때문에 다시 도졌던 불면과 야뇨증, 두근거림을 피하려고 동생과 맛집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이웃과 지인들이 말해주듯, 트라우마는 때로 친근할 정도로 하찮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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