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혐오와 정치적 패배감

by 김남희

청소를 하다가 틀어놓은 유튜브 영상을 닫았다. 비속어가 난무하는 영상에 붙는 광고는 또 얼마나 저질인지. 키치한 느낌을 낸답시고 발음 안 좋은 일반인을 내레이터로 쓰거나 부자연스러운 ai를 동원하니 귀가 아플 지경이다. 같잖고 지겨운 코맹맹이 소리. 대신 클래식을 틀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느낌. ‘컨텐츠’라는 말이 난무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문화는 어떤 내용도 담론도 사라진 유치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한다면 이 지역에서는 살지 마세요’라는 릴스, 유명인의 의상이나 화보를 장문으로 깎아내리는 ‘카드뉴스 매거진’, 저질 커뮤니티 사이트가 구사하는 소수자 혐오를 재밌다고 퍼오는 ‘유머 계정’으로 넘쳐난다. 멍청한 네이버 ai는 연애프로그램 출연자를 ‘관종’이라 깎아내리는 블로그를 요즘 뜨는 키워드 게시물을 올렸다고 추천해 준다. 다음도 비슷하다. 물론 저질 컨텐츠의 범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컨텐츠들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제작되어 알고리즘을 지배하다시피 주류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플랫폼 접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온라인 기업들은 수많은 저질 컨텐츠를 허용한다. 그게 유튜브의 경우처럼 홀로코스트 부정 영상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불쾌하면 불쾌할수록 좋은데, 부정적인 이슈일수록 더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하는 인간의 특성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수정주의든, 한 사회의 윤리를 파괴하는 극우 담론이든 접속 시간을 늘리는 저질 컨텐츠들은 더 많이 노출되고.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재생하면서 수용자의 상식을 왜곡하고 정신을 파괴한다. 한국 사회도 그런 방식으로 망가졌다! 하지만 뭐 어떤가.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사회가 파괴되고 공론장이 망가진 것에 관심이라도 있단 말인가? (미국 국적 창업주가 만든 기업이 비슷한 방식으로 망가지는 미국 사회를 신경 쓰지 않는데, 다른 나라 따위 거들떠보겠나.) 기업이든 크리에이터든 돈이나 벌면 그만인데.


하지만 한탕질 하고 튀는 곳에서 미래는 있을 수 없다. 돈에 미친 머저리들조차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망치고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휘두르도록 조장하면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사람들은 타인의 작은 실수를 때마다 헐뜯고는 했지만, 적어도 그 실수는 (자기들도 잘 못 지키는) 예의나 매너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손톱 색깔이나 표정 따위로 사람을 헐뜯는다. 그것들은 캡처돼 구구절절한 혐오 발언과 함께 업로드되어 오만 군데를 돌아다닌다. 오만 군 데서 그 시시껄렁한 것들을 씹어댄다.


아주 세밀한 것들이 논란이고 도파민의 불꽃이 되고 밈이 되지만, 정작 사회구조든 생활세계든 썩어 들어갈 정도로 변하질 않는다. 우리 사회의 세밀한 논란과 혐오는 썩어갈 정도로 변하지 않는 사회의 정치적 패배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2, 3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유명인의 가십이나 특정 커뮤니티의 밈이 지금처럼 불타오르진 않았다. (물론 그 시절에도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연예 이슈에 과도한 관심과 사이버 불링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가십만큼은 아니지만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그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돼야 할지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탈정치화됐다고 하는 2, 30대들도 말이다. 정치 개혁, 사회 개혁에 대한 열의가 모두에게 있었다. 지금 그 오만 가십과 밈을 주도하며 혐오 섞인 유머를 구사하는 2, 30대들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관심을 주지 않는다.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해서라면 너무 먼 존재들이라 여길 수도 있다지만, 자신들이 속해 있는 학교나 일터에서 마주치는 부조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 생활세계에서의 불의에 맞서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정치인데 말이다. 전 세대에 걸쳐서 정치적인 패배감이 만연해 있다. 물론 그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 때에 따라 특정 개인을 짓밟는 것으로 그 패배감에서 도피하려는지 알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좀 잔인하지만, 정치적 패배를 자초한 것도 자신들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적 주체는 시민이기에. 자신이 정치적 패배를 겪고, 패배감에 시달린다면 그걸 떨치는 방법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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