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by 김남희

긍정적으로 살고 싶어졌다. 꿈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그 꿈을 누리다가 이루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이제 더 이상 어리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재범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암시’를 해보라고 할 때, 그 말이 더는 웃기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암시를 시도하기도 했다. 나는 성공한 작가가 된다... 성공한 소설가이자 수필가가 되고 나의 담론을 전달하는 그런... 최면을 걸듯 스스로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성공한 작가로서 활동할 ‘한국 사회’는 남아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당연하게 가정할 수 없다.


12월 3일 밤 10시에 나는 달력에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랑 월요일은 왜 이렇게 힘이 빠지는 걸까. 아마 일요일엔 교회를 가고, 월요일엔 교회를 가느라 하지 않은 집안일을 몰아서 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때 동생이 갑자기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 윤석열이 계엄을 했대, 라고 말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거 어디서 봤어, 하고 물었고 동생은 트위터라고 대답했다. 내가 트위터로 뉴스 보는 습관 좀 버리라고 했지. 그런 데서 가짜뉴스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저번에 남자 아이돌이 술집 갔다는 뉴스도 가짜였잖아. 뉴스는 포털이나 신문사에서 검색을 해보고, 하면서 네이버에 ‘계엄’을 검색하니 연합뉴스가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라고 속보를 보내고 있었다. 시발. 미친 새끼.


동생은 자기가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언니, 이재명이 국회로 와달래, 같은 뉴스를 알려주었다. 지금 가면 국회까지 갈 수 있나. 예전에 막차 탈 때 11시 35분만 돼도 한성대입구까지 밖에 못 가던데. 지금 가면 여의도 못 가고 끊기는 거 아니냐고. 무엇보다도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신 이번엔 내가 트위터에 들어가서 ‘국회의원’, ‘의원’ 따위의 단어로 검색을 하며, 국회의원들이 월담은 잘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이미 경찰은 국회 정문과 후문을 봉쇄했다. 시민들은 계엄군과 뒤엉켜 실랑이를 벌였다. 제발 숫자 채워라, 응원 같지도 않은 응원을 하며 기도도 하고, 계속 뉴스 탭과 트위터를 새로 고침 했다. 유튜브에서 하는 국회 상황 중계도 틀어놓았다. 본회의장에서 들리는 끝없는 고성. 아나운서와 시사 평론가들이 숫자가 채워졌는지 아닌지를 중계해 주었고, 거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듯 심장은 날뛰었다. 거의 영겁 같던 시간이 지나고 국회에서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고 나서 한결 안심하게 되었을 때도 잠들기는 어려웠다. 계엄 해제는 대통령이 해제를 발표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방통통신위원회 위원을 정해서 보내줘도, 윤석열은 임명하지 않은 추태를 부린 전적이 있었다. 해제 발표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사방으로 퍼졌다. 우리 대통령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면서. 새벽 세 시까지 윤석열이 계엄을 해제한다는 말을 하기를 기다리다가, 수면제 기운에 겨워 잠이 들고 말았다. 윤석열은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예전부터 현 대통령을 싫어했다. 비상계엄 이후의 집회들은 ‘윤석열 퇴진’을 말하지만, 사실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윤석열 퇴진 집회’는 있었다. 나만 해도 윤석열 퇴진 집회를 1년도 넘게 다녔었다. 명분은 많았다. 강제징용 제삼자 변제 해법 강행, 친일적 외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잼버리 파행,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노조 탄압, 각종 사회적 약자 탄압, 여성가족부 장관 미임명 상태, 경찰 수당 미지급 등등. 게다가 정권 비리도 윤석열 임기 초반부터 크게 불거졌다. 집회에서 사람들은 윤석열이 미쳤다고 했고 언젠가는 ‘비상계엄’을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시민의 힘으로 계엄 시도 봉쇄하자. 여기에, “봉쇄하자, 봉쇄하자, 봉쇄하자”를 외치면서도 나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윤석열이 미쳤기로서니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하지는 못할 거라고. 야당과 집회 측 말고 누가 그 얘기를 믿었겠는가. 하지만 사회 다수의 믿음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전두환이 1980년에 광주에서 저지른 학살, 박정희 군부 독재 정권에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 윤석열은 ‘계엄’에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고 항변했지만,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역사적 계엄 사태가 불러온 사실 관계에 기반한다. 인명 피해나 실질적인 계엄 조치 없이 그저 ‘야당의 폭거’만을 전국에 알리려는 의도였다면,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계엄군이 시민과 대치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의 계엄이 아닌데 계엄군을 시민과 대치시킨단 말인가? 그 시간에 대통령의 말마따나 장시간의 연설로 전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게다가 거대 야당이 독주와 폭거를 한 것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 ‘폭거’를 막는 방식은 ‘계엄’이어야 했나? 윤석열의 거대 야당 타령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자신을 이미 한번 탄핵 소추시켰던 거대 야당을 향해서 노무현이 시도했던 것은 계엄이 아니라 대연정이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여소야대 상황을 윤석열만 겪은 게 아니고, 민주화 이후 상당수의 대통령이 짧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을 경험했다. 그들이 여소야대 상황을 뚫고 자신의 국정 기조와 정책을 지키는 방식은 대부분 타협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전략적인 침묵이었다. 상대에게 ‘정쟁 유발자’라는 딱지가 붙을 때까지 말이다. 비열한 방식이어도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은 그렇게 했다. 심지어 독재자의 딸이었어도 말이다. (박근혜도 생각만 했다, 이것들아.)


최악의 경우에는 검찰을 동원해 상대를 사법적으로 공격하는 정도였다. 지금 우리 대통령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검찰을 동원해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압수수색을 시키고, 부정선거 음모론의 진상을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가 신통치 않았는지, 법원의 ‘부정선거’ 부정 판결에 화가 났는지는 몰라도, 이번에 우리 대통령은 자신이 주로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정말 사람을 죽이는 칼을 고르고 만 것이다. 사람도 죽이고, 사람이 그나마 만들어 놓은 형식적인 민주화와 최소한의 정의마저도 죽이는 칼을.


여러 집회에 나가고 또 나갔다. 두 번의 탄핵소추안 본회의 당일 집회, 절로 광장공포증이 유발되던 대규모 집회에도 갔고, 비교적 한산한 월요일의 집회(그래도 비공식 추산이 만 명은 되었다)에도 있었다. 여의도 국회 부근에서 있었던 어느 월요일 집회에서는 집회 이후 행진을 국민의힘 당사로 갔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국민의힘 당 로고가 그려진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할 때는, 저 현수막을 내가 안 들고 있음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탄핵이 정족수 미달로 불발되고 나서는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섞여 국회 주변을 인간 띠처럼 에워싸고 밤 열 시까지 노래를 부르며 서 있었다. 어떤 꼰대들이 “얘네 인기가요 못 가서 빡친 거 아니냐”고 지껄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말이다. (시발, 뇌가 비었나)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는 오늘은 기념해야 된다면서, 어느 피자집에서 ‘투움바 피자’를 시켜서 가족들과 나눠 먹었다. 그 외에도 구속 때의 환희, 석방 때의 울화, 파면 선고를 기다리느라 지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날들을 기억한다. 아침마다 듣던 시사 라디오 방송을 이제는 저녁 때도 듣고, 억지로 감사일기를 쓰거나 단 것을 먹지 않으면 늘 예민하게 화가 나 있다. 일을 하고 집회를 가느라 끼니를 걸러 살은 빠졌다. 아무리 친위 쿠데타라지만, 백일 넘는 시간 동안 윤석열이 파면되어 민간인으로서 형사 재판에 집중하며 지내기는커녕, 현직 대통령으로서 인신의 자유를 누리는 꼴은 더 봐주기 어렵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이 확실히 제지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는 분노를 아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사람으로 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고 우겨대는 학생 같고, 유능한 직장인이라기보다는 유능해 보이고 싶어 하지만 줄 서기밖에는 잘하는 게 없는 직장인과 닮았다. 선진국이 아니라 선진국 읍소 사회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OECD든 G7이든 선진국의 기준을 정하는 곳이 있다면, 그 기준을 ‘당일 배송 시스템 가능’ 같은 것으로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청렴하고 이성적인 사법 시스템과 행정부를 기대할 텐데, 형사소송법을 어겨가며 대통령을 풀어주는 판결을 내린 판사와 그에 따라 항고 대신 ‘석방 지휘’나 하는 검찰 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를 누가 선진국으로 취급해 주려고 할까? 이 나라에서는 유럽의 극우화 따위를 떠들지만, 유럽에서는 2당도 못하는 극우세력이 한국에서는 집권 여당으로서 내란을 부정하는 것에는 합당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외국의 치안에 대해서 떠들어대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그들의 집회에 대해서도 입을 놀리지만, 이번에 일어난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개인의 일탈’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커뮤니티 사이트던, SNS던, 어디서도 내란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고 연예인과 연예인, 유명인과 유명인 이슈에만 몰입해 있다. (개중 일부 이슈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개월 여의 시간 동안 정말 이야기할 일들이 그것들 뿐이었단 말인가? 있는 곳이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는데... 단지 눈을 돌려 기분을 전환하는 것만으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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